[평화 오디세이 2016] 남북,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
본문
비행기는 인천에서 출발해 곧장 1차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가지 못하고 서해를 거슬러 올라 창춘으로 향했다가 기수를 동쪽으로 돌려 만주를 횡단해야 했고, 하바롭스크에서의 귀로 역시 같은 항로였다. 우회로인 셈인데 직항로인 한반도의 북쪽이 철통같이 막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우리의 여정과 논의의 내용이 결국은 북쪽을 제외한 한계 안에서 진행될 것임을 운명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간헐적인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 , 사드 배치 결정으로 동북아 전체가 어수선한 가운데 대륙으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황석영의 연해주일기 ①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
한반도 북쪽 철통같이 막혀
서해로 만주로 빙 돌아가
중국 노신의 글을 떠올렸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오가면…”
인상적인 것은 이번 여행에 동참한 각계의 인사들 대부분이 한반도가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라는 데 동의한 점이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외교 전반에 걸친 위기여서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힘을 합쳐야만 가까스로 극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직접적인 어려움은 민초들이 감당하게 되고,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깊은 상흔을 우리 사회에 남길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고 우리 공동체가 살아나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서로가 공감했다.
좌우, 진보·보수 등의 양극화는 근대화 기간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정부 사이의 갈등의 잔재며 이런 식의 이념적 정쟁으로 집권을 되풀이하게 되면 서로간에 준비되지 않은 정부와 정책의 ‘떠넘기기’가 계속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동북아의 주요 이행기인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든 대전환을 모색해야만 한다. 어찌 보면 현 정부를 끝으로 개발독재 이래의 적폐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블라디보스토크 부두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그는 극동 시베리아를 거점으로 러시아 전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벌여놓은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가 술자리에서 학생 시절에 읽은 중국 작가 노신의 단편에 나오던 문장에 대해 말했고, 내가 먼저 중얼거렸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되는 것이다.”
황석영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2016 오디세이 … 한국 대표지성 47인 5박6일
강두식(현대자동차러시아 판매법인 이사), 김광호(셀트리온 고문), 김병연(서울대 교수), 김석동(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전 금융위원장), 김영기(삼성전자 사장), 김영희(중앙일보 대기자), 김종민(한국콘텐츠공제조합 이사장·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진태(법무법인 인 고문 변호사·전 검찰총장), 김태유(서울대 교수), 나경원(국회의원), 노회찬(국회의원), 박명림(연세대 교수), 박인국(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전 주유엔 대사), 박환(수원대 교수), 성원용(인천대 교수), 송기호(서울대 교수), 송민순(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송호근(서울대 교수), 신각수(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본 대사), 신범식(서울대 교수), 안병민(한국교통연구원 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 오세정(국회의원), 우윤근(국회 사무총장), 원유철(국회의원), 위성락(서울대 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유정준(SK E&S 대표), 유진태(신정글로벌 대표), 이광재(전 강원도지사), 이규형(삼성경제연구소 상근고문·전 주러시아 대사), 이대식(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문열(작가), 이승철(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이종화(고려대 교수), 이창운(한국교통연구원 원장), 이태림(법무법인 세종 선임외국변호사), 이희옥(성균관대 교수), 장훈(중앙대 교수), 정덕구(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정세현(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정의화(전 국회의장), 조윤제(서강대 교수·전 주영국 대사), 주완(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최동열(현대 차 러시아 생산법인장), 최진욱(통일연구원 원장), 최태원(SK그룹 회장), 홍석현(중앙일보·JTBC 회장), 황석영(작가) (가나다순)
[출처: 중앙일보] [단독] 남북,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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