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비전포럼27] 한·일 정상, ‘김대중·오부치 선언’ 실천 리더십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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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개선의 현실적 걸림돌로 꼽히는 강제징용 문제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사법적 현안이자 휘발성 높은 국내 정치 이슈다. 특히 대법원 현금화 결정을 앞두고 있어 신속한 해법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16일 한일비전포럼에는 전·현직 관료와 교수, 여야 국회의원 등 전문가 13명이 모여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과 강제징용 문제의 현실적 해법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여야의 초당적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열띤 논의와 주요 제언을 소개한다.
조현동 외교부 차관 발제 요약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검토되고,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이후 한·일 관계가 경색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6개월간 한·일 관계 개선과 신뢰 회복을 위한 여러 고위급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3일 캄보디아에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간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9월 유엔 총회 당시 일본 측이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 전혀 장애가 없었다. 양국 정상 간에 공감대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현안은 강제징용 문제다. 지난 6개월간 양국이 각급에서 협의를 이어왔고, 국내에선 강제징용 해법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4차례 열고 의견을 수렴해왔다. 지난 9월엔 박진 외교부 장관이 광주시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를 직접 만나 의견을 경청했다.
민관협의회를 거치면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한다면 이행의 주체, 재원 마련 방법, 배상 대상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논의했다. 또 일본 측의 호응 조치도 문제다. (기금 마련 과정에) 일본 기업은 어떤 형태로 기여할 수 있는지, 일본 측의 사과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또 추가적 조치로 추모사업을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수렴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 간 현안 해결의 분명한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앞으로 외교 당국 간 협의는 더욱 밀도 있게 이뤄질 것이다.
과거사와 한·일 협력 ‘투 트랙’ 접근해야
▶신각수 전 주일대사=지난 13일 캄보디아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이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기로 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애매한 상태였는데,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머지 현안도 해결될 수 없다’는 일본의 ‘원 트랙’ 정책이 조금씩 완화되는 분위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고, 일본도 내년에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다각적 검토가 필요하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일본 측에선 한·일 양국이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마련해도 정권 변화에 따라 합의가 유지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합의점을 찾아 해법에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정권이 바뀐다 해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여야가 의견을 모으는 것이 추후 일본과의 신뢰를 이어가는 데도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총리실 직속 한·일 현안 관리 기구 필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강제징용 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 내 조치와 상호 이견을 ‘컨트롤’(관리)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총리실 직속으로 협의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정부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로부터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쌓아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너무 ‘단독 플레이’하는 것 아닌가 염려된다. 또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선 일본하고 돈 문제로 흥정하는 대신 정부 예산으로 대위변제를 해서라도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심윤조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임교수=최종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본다. (민간이 기금을 마련해 먼저 피해자를 지원하는) 병존적 채무인수 등의 방식으로 일본과 합의가 되면, 식민 지배의 불법성 여부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원할 건 지원하면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대위변제가 이뤄지면 대법원도 사법 자제 차원에서 더는 현금화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노무현 정부 때 공개된 외교 문서를 보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개별적으로 보상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한국 측에서 ‘정부가 일괄해서 피해자에게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했다는 점이 문서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간 합의를 서두르기보단 우선 한·일경제협회와 일·한경제협회 등을 통해 자금을 확충해서 피해자 지원에 활용하고 일본과는 시간을 두고 협의에 나서야 한다.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외교적 문제이면서 법적인 문제이지만 사실은 정치적 문제다. 여당은 강제징용 문제에 국한해서라도 야당을 설득해 협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침 징용 문제에서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야당에서도 전향적 입장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 다만 어떻게든 일을 쉽게 해결하려는 관성은 경계해야 한다. 법적으로 취약한 해법을 밀고 나가면 추후 또다시 법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위안부 합의 논란 되풀이 말아야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걱정되는 부분은 피해자들이 병존적 채무인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전범 기업의 출연과 사과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해법을 마련해도 해도 ‘불완전 연소’가 된다. 피해자들이 또다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차원에서 대법원의 현금화 결정 이후에 해법을 마련하는 플랜B를 제안한다. 대법원의 사법절차가 이행되도록 한 이후 현금화 결정이 나면 정부가 일본 기업의 손실액을 보전하는 조치를 하는 방식이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민관협의회에 참가하며 느낀 건 외교부 장관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외교부가 관할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법과 정치, 역사·문화 등 모든 사안이 연동된 만큼 대통령실 혹은 총리실 직속 위원회 등의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야당도 참여하는 합의안 도출해야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한·일 관계 악화의 기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합의는 유효하다”는 자기 모순적 입장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며 한·미·일 공조를 추진하려는 의지를 드러냈고, 문 전 대통령은 이를 남북 문제 해결에 활용하고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 측에선 연속성과 일관성 없이 정권에 따라 합의가 요동친다고 보고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국제법적 조치와 민사상의 보상 조치를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우리 정부로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기본 정신을 훼손할 의도가 없다는 점, 사법부는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행정부는 따로 입장이 있다는 점을 일본에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배상 대상자가 무한정 커지지 않는다는 점도 일본 측에 공유해야 한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번에 나와야 하는 강제징용 해법은 현재 국내 정치 상황을 볼 때 어렵겠지만, 일본으로부터 한국이 강제징용 해법을 다시 뒤집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얻어야 하고, 우리 국민도 이 정도면 합리적으로 처리됐다고 여길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여야가 함께 합의를 하고 논의한다면 일본 측에 청소년·문화 교류 등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패키지 딜’(종합 타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야당의 참여를 끌어내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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