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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비전 포럼] 국내법과 국제법 인식차 좁혀 강제징용 충돌 해결하자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9-08-16 10:03    2,65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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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지배, 불법 전제로 징용 판결
청구권협정에는 불법성 언급 없어
외교 사안은 사법 자제의 원리 필요
국제법과의 간극은 외교로 풀어야

위기의 한일관계 연속 진단 <10>



악화 일로의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한 ‘한일 비전 포럼’ 10차 모임이 지난 14일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징용피해자 배상판결의 국제법적 의미’를 주제로 양국 정부 간 갈등을 촉발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강제징용 판결의 역사적 맥락을 짚었다. 참석자들은 사법부가 외교 부처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법 자제의 원리’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국내법적 가치와 국제사회의 시각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그만큼 갈등의 발단인 징용 피해자 문제 처리가 중요해졌다. 
 

이근관 서울대 법학 교수 발제문

이근관
2012년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양국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한국 산업의 심장부인 반도체 산업을 정조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한편으로 아베 정부의 부당성을 준엄하게 추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장기적 국가이익을 위해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법적 관점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먼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협정이 체결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 협정은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그중에서도 제4조를 기초로 체결됐다. 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 대해 ‘징벌적 평화’를 예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합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냉전의 도래와 더불어 급전환됐다. 

1947년 공산주의 세력 확대 저지를 위한 트루먼독트린과 미국 주도의 유럽부흥계획으로 마셜 플랜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반공의 최후 보루’로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일본에 대한 입장도 ‘관대한 평화’로 전환됐고 이런 인식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에 ‘일본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이는 협상 당시 협정의 기초가 됐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투영된 기본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일본에 의한 한·일병합이 합법적이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따라서 징용 판결을 둘러싼 갈등은 국내법과 국제법의 인식 격차를 어떻게 좁혀나갈지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국제사회에서 보는 시각과 우리 헌법적 시각 사이에 ‘갭’(차이)이 있다. 2차 대전 후 대부분 식민 통치국과 식민지는 식민 지배를 인정하고 ‘이양 협정(devolution agreement)’을 통해 권리와 의무 관계를 명확히 종결지었다. 한국은 상당히 복잡하고 예외적이다.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전제를 갖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타협했다. 이런 배경을 이해 못 하면 대법원 판결에서 제기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매우 복잡하고 다원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세계 식민지 중 합법적으로 식민지가 된 곳이 어디에 있나. 우경화된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 강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사법부가 일제 식민 지배가 불법 강점이었다는 것에 대해 명확히 판결했다. 최근 초당적 방일단이 일본에 갔는데, 공산당만 빼고 여·야가 한목소리로 ‘65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개인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한국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기호 변호사=이번 사안은 외교 문제는 행정부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전통적 의미의 ‘사법 자제’가 작동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강제노동 피해자가 독일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해 승소했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패소하자 다시 이탈리아 국내법으로 돌아가서 ICJ 재판 판결을 무효화시킨 사례도 있다. 징용 판결 역시 인간적 존엄성, 기본 인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적 접근으론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이근관 서울대 교수=사법 자제의 원리는 사법부가 외교 사건을 맡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외교가 갖는 복합성과 민감성 등에 비춰 외교 담당 부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화를 외치며 수출을 지향하는 국가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동포들도 많다. 헌법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이런 부분을 어떻게 조화롭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노무현 대통령 때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6200억원을 지불한 것과 대법원 판결이 다르게 해석되며 파장이 커진 것 아닌가. 

▶유의상 전 국제표기명칭대사=강제동원 피해 문제는 청구권 교섭 1~7차 회담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뤄졌다. 1949년 작성된 정부의 ‘대일 배상 요구 조서’를 보면 강제동원 피해 문제가 ‘전쟁 피해’로 들어가 있다. 일본이 식민 지배 피해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자 우리 대표단이 지혜를 짜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대한 인적·물적 피해 배상’으로 집어넣었다. 동일한 대상을 놓고 과거 정부 입장과 대법원 판결이 다른 것이다. 

▶신현호 대한변협 인권위원장=2차 대전 이후 집단학살·성범죄·강제노역은 국제 반인륜 범죄로 다루고 있다. 이미 위안부의 경우 유엔 인권이사회가 일본에 사죄를 권고하는 결의를 냈다. 이런 반인륜 범죄를 위반한 조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라는 게 많은 학자의 견해다. 

▶이근관=국제사회에서 국제법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강대국들은 과거 모두 식민 행위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식민 지배 자체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강제징용이 위법이란 우리의 입장을 적극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당초 일본 기업은 피해자들과 화해할 용의가 있었다. 니시마쓰 건설이 중국인 피해자들과 화해한 전례도 있다. 일본 정부가 막고 있는 것이 문제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사법 자제’에 빗대면 요사이 한국 정부의 모습은 ‘행정 자제’로 보인다. 적어도 우리 정부가 청구권협정을 무시하거나 뒤집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 말을 안 하니 일본이 무시한다고 받아들이고 체념하다가 증오·불만 단계를 지나 칼을 빼든 것이다. 사법부가 결정을 내렸어도 행정부에서 따로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정부가 지켜왔던 정책의 연속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정책 연속성과 외교적 해결 바람직 

▶이원덕 국민대 교수=대통령이 대일 배상권 포기를 선언하는 제3의 방법도 있다. 식민 지배가 불법이란 기조를 지키면서 일본에 사죄·반성을 요구하되, 일체의 물질적 배상 요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대신 피해자에 대한 물질적 조치는 우리 정부가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93년 위안부 문제가 대두했을 때 이 해법을 제시했다. 당시 대부분 국민이 지지했다. 

▶신각수=대통령이 외교적 해결 권한을 갖고 있지만, 무슨 권한으로 개인 권리 포기를 선언할 수 있겠나. 특별 입법을 통해선 몰라도 대통령의 고유 행정 권한으로는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본다. ICJ에 가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소송대리인이 대법원 판결의 요체인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해야 한다. 그러면 불법성 문제부터 ICJ에서 다루게 되면서 문제가 복잡하게 된다. 결국 외교적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모를 때는 답이 있었는데, 여러 사정을 알고 나니 더 안 보인다. 결국 국내법과 국제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 차이를 외교적으로 메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한일 비전 포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략적 해법을 찾기 위해 전직 외교관 및 경제계·학계·언론계의 전문가들이 결성한 포럼.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대표를,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정리=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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