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비전포럼8] “미·중 택일할 게 아니라 한국의 원칙과 입장 세워야”
본문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트럼프 시절 시작된 미·중 대결은 향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한국은 어떤 전략을 설정하고 어떤 준비를 갖춰 미·중 대결이 불러올 격랑을 헤쳐 나갈 것인가. 한중비전포럼 8차 모임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전략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한국의 대응책을 모색해 보았다. 22일 열린 포럼은 현장 발제와 화상 토론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외교 안보 분야 발제)=지난 4일 바이든 대통령이 중요한 연설을 했다. 트럼프 시기의 미국 우선주의와는 달리 글로벌 이익이 증진되어야만 미국의 이익도 증진된다면서 미국의 리더쉽과 정당성 회복을 강조했다.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포린어페어즈에 발표한 논문도 중요한데 민주주의 세계 연대 강화와 가치중심 외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당면 이슈는 중국이 압도적이다. 트럼프 후기처럼 중국을 이데올로기의 적이라거나 신냉전적 봉쇄의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제하고 각 분야별로 중국의 잘못된 행동들을 지적한다. 경제 부분에서의 강압적 행동, 기술 부분에서의 불법적 행동, 중국 국내 문제를 포함한 인권문제 등이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 쿼드플러스(QUAD+)에 들어가냐 마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슈별 우리의 입장 또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미국이 강조하는 양자적·지역적 견제에 직접 들어가기 어렵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다자주의 참여 전략이다. 탄소중립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준비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우리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여서 그런지 북핵 문제 중심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북핵을 비확산의 문제로 보는데 우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보기 때문에 초점과 속도의 차이가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경제 통상 분야 발제)=바이든 행정부는 환경, 노동인권, 군사안보, 국가체제와 관련된 문제까지 연합해서 경제·통상 정책을 펼칠 것 같다. 관세 조치 하나만 얘기한 트럼프와 달리 탄소국경세 등 환경이나 노동 인권 문제를 중요한 카드로 활용할 것이다. 사실, 트럼프의 대중국 봉쇄조치는 구멍이 많았다. 트럼프 행정부 때 했던 1단계 무역 합의에는 섹터 별로 중국의 구매액 목표치가 있었는데 기껏해야 40%밖에 달성이 안 됐다. 딱 한 분야만 120% 달성됐는데 그게 바로 반도체다.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를 압박하고 첨단 기술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한다고 했지만 중국은 무역합의를 지킨다는 명분 하에 반도체 사재기를 했다. 이런 식의 구멍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통상에서도 전략 우방국과의 연대를 강화한다. 미국이 새로 짜는 경제연합체의 핵심은 디지털 통상 질서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이 속에서 디지털 서플라이 체인에 중요한 대만의 역할이 부상할 것으로 본다. 미국은 지역 우방 국가들을 모으는 경제블록화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설 방법이 마땅치 않은데 기존의 일대일로 참여국, 즉 저개발국가들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중국이 다자주의를 표방하고 미국은 지역주의를 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방금 말한 대로 미국이 중국의 대외 확장을 막고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봉쇄하는데 가장 필요한 지역은 대만이다. 반도체 등 대만의 산업체제는 미국과 일본의 합작품이다. 안보적 측면에서도 대만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다. 미국이 운영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사드) 가운데 가장 큰 레이더는 대만 신주(新竹)에 있다.
▶문흥호 한양대 교수=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협력할 부분, 경쟁할 부분, 대결할 부분을 나눠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 기후변화 문제나 국제기구 개입, 비확산 문제 등에서는 협력을 구할 것이다. 경제·통상 부분은 중국 시장, 경쟁력, 기술개발 수준 등을 볼 때 미국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진 못하고 경쟁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 대결은 군사·안보적 분야다. 미국은 하드파워에서는 자신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의 지능화 정보전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 미국의 우려가 있다.
▶왕윤종 경희대 교수=세계에는 두 가지 형태의 통합이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얕은 통합(Shallow Integration)의 전형적 형태다. 반면 바이든 정부가 꿈꾸는 것은 가치와 이념, 체제 안보 규범을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는 깊은 통합(Deep Integration)이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 또는 행운일 수 있다. 그동안 동네 야구를 하다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린치핀 역할을 할 수 있고 쿼드플러스에 들어갈 수도 있다. 왜 우리는 이것을 스스로 걷어차야 하나.
▶이정남 고려대 교수=중국은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고 전망하는 것 같다. 이유가 있다. 가령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때문에 미국과 유럽 간의 신뢰관계가 깨졌다. 최소한 유럽이 미국과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중국을 억제하는 쪽으로는 가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하면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1순위로 삼고 있다. 중국은 지구전을 내세운다. 러시아와는 협력을 강화하고, 유럽은 대중(對中) 견제에 적극 개입하지 않도록 중화시키고, 아세안 등 동아시아를 근거지로 삼아 성장을 이끌어 내면서 서서히 미국의 대응에 준비해 나가는 큰 구상을 하는 것 같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미국의 대중전략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미국 대서양위원회(애틀랜틱 카운슬)의 중국 보고서(일명 The Longer Telegram)는 시진핑 이후(포스트 시진핑) 시대에서의 미·중 협력을 도모하자는 쪽으로 톤을 잡은 것 같다. 당장 군사적 봉쇄를 하진 말고, 중국이 내부적으로 모순이 많으니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는 외교적으로 봉쇄하고, 그 다음에 중국이 합리화되면 미국이 원하는 강대국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체제전환(레짐체인지)이 아니라 중국이 국제 규범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조정해 나가자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우리가 시진핑 방한을 둘러싸고 지나치게 중국 쪽으로 경사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 전략적 공간을 상당히 제약할 수 있다. 한·미 동맹, 한·중 협력 구조 위에 우리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얘기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엊그제 58개국이 서명한 외국인 구금 반대선언에도 큰 틀에서 우리의 원칙을 표명할 순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안 하면 한국은 왜 저러고 있을까 하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바이든은 전면적 체재 경쟁이 아니라 전략적 경쟁론을 택했던 것 같다. 그 출발은 미·중 관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중국을 압박하더라도 전략적 타협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 가능성을 과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미·중 대결이란 기본적 방향은 계속되겠지만 세계 경제의 연계성(Connectivity)이 너무 높아져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전략적,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트럼프 정부의 외교 기조가 원맨쇼였다면, 바이든의 팀은 세련되고 잘 정리된 실천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외교도 대응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미·중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외교·통상 각 부분별로 정교한 포지션 페이퍼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금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잘 정리된 우리 의견을 만들어나갈 때가 되었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사회)=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은 쿼드플러스와 같은 대중제재에 직접 참여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각 사안별로 원칙적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협력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또한 우리가 사회 역량을 집결하고 정파에 구속되지 않는 보다 객관적인 견해들을 만들고 이를 표명해 나가면서 동네 축구가 아닌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자는 얘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
정리=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