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비전포럼] “여야가 힘 합쳐 미국과 잘 지내야 우리 경제도 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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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에 신냉전의 바람이 불고 다시 진영 대결이 펼쳐지는 걸까? 북·중·러가 잇따른 연대를 과시하는 반면, 한·미·일은 관세에 발목이 잡혀 동맹이 맞냐는 소리가 나온다. 그런 가운데 미·중 정상이 맞닥뜨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중비전포럼은 14일 서울 HSBC 빌딩에서 ‘중국 전승절 북·중·러 연대 이후, 동북아 정세’를 주제로 모임을 갖고 격변의 현 시국을 살펴봤다.
중국, 북 핵보유국 지위 인정 않을 듯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발제)=북·중·러 회동은 3국 각자의 이익에 따라 이뤄졌다. 북한은 김정은의 대내외적 위상 강화와 북·중 관계 개선, 핵보유국 지위 인정, 경제적 지원 등을 노렸고 중국은 역내 영향력 제고로 북·미 대화 시 중국이 소외되는 걸 막으려 했다. 러시아는 중국과의 경제 및 에너지 협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중요한 건 3국 모두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전략적 계산을 갖고 반미 성향의 다자연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는 대미 협상력 증진을 위한 것이지 그 이상의 대립을 꾀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연대 강화의 상징성을 넘어 진영화로 나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 안정을 추구하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또 북·러에 연루되는 걸 우려한다. 중국이 추구해 온 ‘책임 대국’의 이미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중국을 상대로 다양한 한·중 전략대화 채널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며 양자협력의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현재 중국에 대해 협력의 필요성과 반중 정서가 충돌 중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발제)=각자도생의 시대다. 미국은 자신이 세운 국제질서를 부정하며 자국 이기주의로 후퇴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국제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이 국제 리더십의 대안임을 자처하고 있다. 강국들이 한결같이 국익 증진과 지도자들의 정치 이익 추구에 나서고 있는 상황으로 우리는 상황 변화에 따른 최적의 정책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우선 군의 자강력 증진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전작권 전환을 달성해야 한다. 이에 따른 국민 불안을 고려해 확장 억지를 보다 현실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활용할 필요도 있다. 우리가 회담이 이뤄지도록 도우면서 그 동력으로 북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한·미가 함께 대북 투자사업을 진행하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북한의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원산 갈마지구에 대한 한국인의 개별관광을 허용할 수 있겠다.
중국, 북한과 ‘관리된 혈맹 관계’ 유지
▶신정승 동서대 석좌교수(전 주중대사, 사회)=중국 전승절 행사 때 아세안 국가의 참석 수와 격이 함께 높아진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시기에 누가 앞설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해 아세안의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중국의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명예교수=중국의 외교전략이 과거 ‘상쇄전략’에서 현재는 ‘질서를 구축하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의 강 대 강 대립을 피하면서 장기적 균형을 추구하는 중국식 지구전이다. 중국은 ‘서방 대 반서방’ 구도가 부담스러워 ‘서방 대 비서방’이라는 틀을 구축하려 한다. 최근 부각된 ‘북·중·러 대 한·미·일’ 구도는 우리 사회가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프레임일 뿐 실제 북·중·러 협력에는 한계가 있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최근 “북·중은 운명공동체”라고 언급했듯이 양국은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나 경제 영역에선 여전히 제한이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은 무제한이 아니라 원유와 식량, 소비재를 일부 지원하는 수준이다. 이는 중국이 국제 제재의 틀과 자국의 경제 여건을 고려해 ‘관리된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향후 국제질서는 단순한 패권 경쟁이 아니라 ‘표준 경쟁시대’로 진입할 것이다. 누가 글로벌 규범과 표준을 선도하느냐가 패권의 핵심이 될 것이다. 중국은 현재 브릭스(BRICS)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포섭해 ‘중국 중심 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질서가 규범과 표준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점에서 한국 외교는 균형자(balancer)가 아닌 조율자(coordinator)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부·통일부·국정원 협업 구조 필요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지금의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고, 중국도 우리가 아는 중국이 아니다. 한데 한국은 여전히 과거의 이미지 속에서 두 강국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 한국 외교는 이상주의적 관점이 지배했다. 그러나 국제 정치는 이상이 아닌 힘의 세계다. 냉철한 힘의 분석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 외교는 현실주의 위에 세워져야 한다. 변화한 세력 구조와 물질적 기반 위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회복하고 국익 중심의 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교수=중국의 대외전략이 미국 견제를 위한 공세적 차원이 아니라 자국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최근 북한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을 ‘대립 구도’가 아닌 ‘공존 구도’ 속에서 봐야 한다. 군사·경제 영역 못지않게 문화·인식의 갈등 관리가 한·중 관계의 관건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중국은 마치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기능을 통합한 듯이 국가 안보와 대외 공작을 일원화했다. 우리도 외교부와 통일부, 국정원 등이 모두 협업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북한 문제와 대중 외교를 분리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북 및 대중 정책은 외교와 정보, 안보를 통합하고 문화적 소통 역량까지 모두 포괄해 만들어져야 한다.
기술 경쟁력 회복이 자강의 출발점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경제가 세계 외교·안보 변화의 코드다. 김정은이 신냉전 구도를 강조하지만 시진핑은 “그런 시대는 지났다”며 거부한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으로 세계와 연결된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인 북한·러시아와 도매금으로 엮이는 것이 손해다. 미국이 트럼프라는 문제적 인물을 불러낸 것도 대공황 직전 수준으로 악화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의 결과다. 북한이 외교적 선전과 핵 무력 과시에 나섰지만 경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북한을 관리해 왔다. 북·미 수교가 유일한 해법이다. 북한도 외부 세계와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 국제적 행동기준과 규범을 지키게 된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우리의 외교전략은 ‘두 가지 핵심 원칙’으로 요약돼야 한다. 첫째는 자강(自强)이고 둘째는 연대(連帶)다. 군사력 강화는 필요하지만, 그 바탕엔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력을 제약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규제 중심 정책은 성장 동력을 떨어뜨린다. 기술 경쟁력 회복이 곧 자강의 출발점이다. 연대는 실리적 동맹과 가치 연합이다. 강대국 정치가 귀환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외교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시대의 생존 해법은 기술·경제력에 기반한 자강, 그리고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동맹 연대다.
북한 문제는 트럼프가 주도하게 해야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한국의 가장 큰 과제는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다. 유럽의 난민문제가 미국으로 넘어가 이민문제가 됐고, 정치지형을 완전히 바꿨다. 포퓰리즘이 대세가 됐고, 마침내 트럼프가 등장했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정치에는 없는 ‘장사꾼의 언어’를 사용한다. 동맹인 우리에게도 높은 관세에 3500억 달러의 현금성 투자를 요구한다. 그를 잘못 다루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야가 힘을 합쳐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 그래야 중국하고도 잘 지낼 수 있다. 우리 경제를 잘 만들 수 있다. 북한도 돕고, 미국에 투자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반기업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주파, 동맹파 대립은 시대착오적이다.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사안별로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의 외교다. 이재명 대통령이 잘 정리한 대로 우리는 페이스메이커다. 피스메이커가 뛸 때 같이 움직여야 한다. 때가 오지 않았는데 페이스메이커가 먼저 나서서 피스메이커를 견인하려 하면 국제사회의 고아가 된다. 북한 문제는 트럼프가 주도하도록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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