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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 다보스포럼에서 읽은 지정학 풍향계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4-01-31 10:13    1,302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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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설과 토론이 무엇인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올해는 380명의 국가 정상과 고위급 정책결정자, 200명의 학자와 전문가, 또 기업가와 언론인 등 2800여 명이 다보스포럼의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 필자는 주로 국가 정상이나 고위인사의 연설과 대담, 그리고 지정학과 경제 관련 세션에 참석해 동향을 이해하고 해법을 탐구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러·우) 전쟁은 올해를 넘어 장기로 갈 것 같았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해 매우 단호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연설 후에 이어진 대담에서 “러시아가 이 전쟁에 결코 승리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 용맹한 군사들이 유럽을 지킬 수 있도록 무기를 쥐어 달라”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은 많은 참석자의 공감을 얻었다. 러시아가 ‘유럽의 공적(公敵)’이 된 분위기는 세션을 지배했다. 영국 전직 외교관이 “서방이 러시아 관여 정책을 펴지 않은 결과가 전쟁으로 귀결된 것 아니냐?”며 질문하자 동유럽국가의 장관은 순진하다며 받아쳤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막지 못하면 다음은 우리가 직접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위기감이 유럽 정책결정자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다. 


러·우 전쟁 추이는 미국 대선 결과나 러시아 내부 변화에 달려있을 듯하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는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려고 나설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며 그 여파가 나토 약화에까지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일부 현실주의 정치학자도 중국 대응이 미국의 최우선과제라며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 국력을 소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러시아 내부도 중요한 변수다.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인명 손실이 커지고, 16%에 이르는 고금리와 외국 투자자본의 이탈로 러시아인의 삶은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러시아 내 독립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점령한 영토를 확보한 차원에서 전쟁을 종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가 2022년 여름의 11% 수준에서 2023년 9월에는 28%로 급증했다.

2024년 미·중 관계는 악화나 개선보다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전문가 대부분은 올해는 미·중 모두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여유가 없다는 인식을 피력했다. 중국은 경제에 발목이 잡혀 있고, 미국은 연말 대선을 의식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당분간은 충돌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분석이다. 다보스포럼에서 중국의 리창 총리도 ‘거시경제정책 조율, 공급망, 과학기술, 녹색성장, 포용적 성장’이란 다섯 영역에서 서방과의 협력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 중국경제는 정부의 확장적 경제정책 없이도 5.2% 성장했다면서, 앞으로도 중국은 성장을 지속할 것이며 해외투자에 열려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연설은 조심스러우면서 시끄러웠고, 팩트보다 ‘정답’을 되뇌었다. 연설 후에 중국인 참석자는 필자에게 리창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중국경제를 재점화할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호주의 전 총리이자 중국 전문가인 케빈 러드는 중국경제가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차이나’론은 오류라고 주장했다. 내수로 충분히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른 참여자는 중국인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소비가 늘어나겠냐며 반박했다. 필자가 “중국경제의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국영기업과 은행의 민영화가 필수적인데 이런 구조개혁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는 의식적으로 대답을 회피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의 경제학자는 녹색성장이 구조개혁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그러나 녹색 전환으로 후생은 증가하겠지만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다. 이제 중국의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는 진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지정학 변화는 북한 문제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까. 러·우 전쟁의 장기화는 북한 등을 밀어줄 순풍이다. 하지만 역풍도 있다. 중국은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북한 핵실험이나 거센 도발을 막으려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북한 내부와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할 때 김정은이 큰 사건을 올해 일으킬 확률은 낮다고 평가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중·러·북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일 때 생긴다. 비틀거리는 세 세력과 패권 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남아있는 한 지정학 폭풍은 몰려온다.

폭풍은 다가오는데 우리를 안전한 항구로 데려다줄 인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보스포럼은 과학기술, 경제학, 민간 부문에 기대를 걸었다. 이 삼두마차가 과연 폭풍을 뚫을 수 있을까. 누가 마차를 몰고 있나. 각국의 국민은 마부인 지도자에게 희망을 걸지만 요즘은 그들이 광풍을 자초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정학 폭풍에 얼마나 준비돼 있나. 정치는 무엇을 가지고 싸우고 있나. 아직도 석기시대 부싯돌 다툼인가.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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