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 포스트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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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NN 보도로 촉발된 김정은 위중설의 진위는 머지않아 드러날 듯하다. 그 결과야 어떻든 이는 우리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중요한 사실을 환기시켰다. 김정은 시대도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잘 아는 대로 그는 건강하지 않다. 북한 경제가 태풍 속으로 빨려드는 조짐도 없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포스트(post) 김정은 시대의 예측과 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포스트 김정은 시대의 핵심 문제는 체제 안정성과 정책의 변화 방향이다. 최고지도자의 권력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약화될 듯하다. 김정은의 공포정치 하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을 경험한 권력층은 다시 공포의 칼을 휘두를 사람을 지도자로 옹립하지 않을 것이다. 스탈린 사후 온건파로 분류됐던 흐루쇼프가 소련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도왔던 베리야를 다른 폴리트뷰로 위원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백두혈통이 권력을 이어받아 공포정치를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면 권력층은 한사코 세습을 막으려 할 것이다. 이는 김여정과 같은 백두혈통이 지도자로 추대된다 해도 엘리트층과 권력을 분할하거나 이들의 섭정을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설 경우 경제 개혁 가능성은 커진다. 자본주의는 경제를 정치로부터 독립시킨다. 당연히 지도자의 권력 행사는 제약받는다. 일인 독재에선 이 부담을 혼자 져야 하지만 집단지도체제에선 권력층 수만큼 분담한다. 따라서 개혁·개방으로 인해 권력자 개개인이 치르는 정치적 비용은 집단지도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낮다. 베트남도 이 덕분에 보다 쉽게 도이모이 개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백두혈통이 아닌 이가 권력을 잡게 되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미 외화벌이와 시장에 익숙한 권력층 일부는 개인적 치부를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를 선호할 수 있다. 이들은 부분적으로 잃게 되는 권력 대비 얻게 되는 부(富) 의 사이를 분주히 저울질 할 것이다.
북한의 개방을 바라는 우리 입장에서는 집단지도체제가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강력한 일인 독재에서의 이탈은 사회주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포스트 김정은 시대는 단명에 그칠 수 있다. 심지어 김정은 시대와 동시에 북한 사회주의가 막을 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두혈통과 권력층의 이해가 엇갈릴 가능성뿐 아니라 권력층 내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당·내각 등 국가기관끼리 권력과 금권을 두고 충돌하거나, 시장과 무역에서 큰 돈을 번 세력과 그렇지 못한 쪽 사이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김정은 시대는 얼마나 남았을까. 이는 무엇보다 그의 건강에 달렸겠지만 경제 상황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번 CNN 보도에서 드러났듯 그의 건강이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경제 상황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하다. 지금 북한경제는 제재라는 중병과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동시에 앓고 있다. 북한 당국도 자신감을 잃은 듯,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보고에서 ‘투쟁과 전진에 장애가 있음’을 인정했다.
북한의 외화도 고갈되고 있다. 4월 22일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이 필수품을 제외한 소비재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결정이라고 둘러댔지만 숨겨진 이유는 외화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날 미국의 NK뉴스는 평양 주민의 패닉 구매로 수입 소비재가 동났다는 기사를 실었다. 북한 시장에서 판매되는 소비재 중 50% 이상이 수입품이다. 소비재 수입을 막으면 이로 돈을 벌던 세력은 큰 충격을 입게 되고 일반 주민의 불만도 비등해진다. 또 17년 만에 인민 공채를 발행하여 그 중 40%는 개인에게 외화를 받고 판매한다는 기사도 데일리NK에 실렸다. 이같이 정부 보유 외화가 바닥나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주리라 믿었던 핵이 이제 김정은의 심장을 압박하고 있다. 제재와 코로나로 그가 움직일 공간이 크게 좁아졌다. 이 코로나 난국에 위험한 군사 도발을 한다면 중국마저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이 경제는 심각히 가라앉고 있다. 소비재 수입까지 막았으니 김정은 지지도는 바닥을 향하게 됐다. 평양에 종합병원을 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일으킨 경제 충격을 극복하기에도 버거운 지금은 더욱 그렇다. 최선은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와 코로나, 김정은의 건강 문제가 중첩된 상황에서 남북철도 연결, 개별관광 추진을 계속 외치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해외투자자가 한국 정부의 상황 판단력을 의심할 수도 있다.
위기의 시대에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우리 정부는 다양한 북한 변화 시나리오에 대한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 놓아야 한다. 평화경제라는 애드벌룬만 붙들고 있다간 경제도, 통일도 다 잃어버릴 수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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