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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북 비핵화해야 평화 가능하다는 협상 목표 후퇴 안 돼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0-05-26 09:55    4,80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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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모두 지켜야 할 대북 원칙 


냉전 이후 한국의 대북 정책 기본 축은 한반도와 남북 관계의 현상 변경 추구였다. 분단이 굳어지는 길을 넘어서서 남북이 통합하고 나아가 통일로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자는 데 보수·진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건 이유도 현상 타파를 통해 민족 화합과 남북 관계 개선을 이루어보자는 열망 때문이었다. 북한이 응하느냐 마느냐가 달랐을 뿐이다.

남북 관계의 출렁임은 북한이 국제 사회 우려와 반대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본격화하면서부터였다. 북한이 외교적 고립이나 경제적 어려움에도 핵 개발을 통한 체제 안전 보장을 추구하면서 한국의 대북 정책은 보수·진보 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북한 문제가 남북 관계 틀에 머물지 않고 국제 사회 역학과 맞물려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였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민족 화합을 이루는 게 좋다는 명제를 받아들이면서도 보수·진보 진영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시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북한 선의에 기대는 평화는 위험

첫째, 보수·진보 진영 모두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민족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평화를 갈구한 점에서 동일하다. 어떤 방식으로 평화를 이룰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진보 진영은 반전 평화, 협력적 평화에 가치를 두었다. 남북 관계 전반의 개선, 특히 남북 경제 분야에서의 기능적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통합의 길이 열린다는 게 진보가 추구하는 원칙이다.

북한을 윽박지르기보다는 달래고 끌어안아 신뢰를 구축하고 북한을 안심시킨다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는 방식의 기본은 대북 제재와 압박을 완화하고 남북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외부적 환경과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본다. 햇볕정책은 이러한 철학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러한 사고방식의 원형은 그대로 남아 있다.

반면, 보수 진영은 비핵 평화와 한국 안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을 먼저 없애지 않는 한 위선적 평화, 불안한 평화, 북한의 선의에 의한 평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비핵화가 남북 관계 전환의 필수조건이라고 본다. 또 핵이 있는 평화란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분단 고착화로 가는 길로 보기 때문에 민족 통합을 위해서는 비핵화가 불가결하다고 본다.

나아가 북한 비핵화가 어렵다면 군사력 균형을 위해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을 인정하고 나면 ‘무릎 꿇은 평화’ ‘구걸하는 평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멈추지 않으면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확장억제의 신뢰성 제고를 통해 대북 억지력을 지속·강화하자는 게 보수의 논리다. 외부적 여건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개방·개혁의 거부라는 ‘내재적 논리’가 통합의 장애라는 인식이다.

둘째, 보수도 진보도 북한과의 협력을 추구하자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무엇을 위한 협력인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린다. 보수의 대북 협력 노선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협력을 지향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북한 체제의 ‘정책 변화’나 ‘체제 변환’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자는 극단적 의견도 있지만, 이보다는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정책 노선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협력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 압력과 제재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보수의 논리다.

북한 체제가 가지는 비민주성·폐쇄성·비개방성에 주목하면서 이것이 남북 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 주민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북한 체제의 균형을 흔들어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를 강화하고 정당화시키는 협력이 아닌, 자유민주체제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한국 주도형 통합과 통일에 도움이 되는 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진보 진영은 북한 체제의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남북 협력을 추진하자는 현실론을 내세운다.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북한 체제의 안정성에 기반을 둔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서 한국의 압도적인 경제적 지위를 활용한 남북 경제 협력 구도를 만들면 북한도 정상국가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의 현상 유지를 기초로 하는 협력 방식이라는 점이 보수와 다르다. 북한이 어려우면 도와줘서라도 체제가 어렵지 않게 하는 것이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극단론도 있다.

전략적 협력으로 정상국가 북한 이뤄야

궁극적으로는 북한 정권을 궁지에 몰거나 어렵게 만들지 말고, 정상적 거래 관행 정착을 통해 평화 공존을 추구하고 협력을 촉진해 국가연합 형태로의 전환을 이루는 것을 통일의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 보수와 다르다.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을 막는 것은 보혁을 넘어선 모두의 관심사이고 공통 목표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길에 동참해야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가 가능하다는 협상 목표를 결코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플랜B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을 안보 강국으로 만들고 한·미 동맹을 강건하게 하는 선택지를 유지해야 한다. 안보가 흔들리는 가운데 평화는 없다. 북한 정권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협상을 통한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강성대국으로 가려는 북한의 전략을 우리 손으로 도와주는 자가당착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국제 기준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정상국가로 변화할 수 있게 유도하는 전략적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보수·진보의 공통된 인식에 기반한 대북정책 마련해야
대북 접근과 관련해 보수와 진보의 공통기반은 무엇일까. 최대공약수에 미치지는 않지만, 최소공배수는 존재한다. 보수·진보 진영은 공통된 인식을 기반으로 서로 간의 이견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마련해야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있다.

첫째, 북한과의 전쟁이나 선제적 군사적 수단의 사용(preemptive strike)을 피하고자 하는 데 있어서 이견이 없다. 이는 민족의 파괴적 공멸을 의미하며 통일이라는 대의를 무의미하게 하기 때문이다. 무력에 의한 통일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단시일 내에 제어 불가능한 북한 정권의 붕괴나 급변사태(contingency)의 예고 없는 도래를 원하지도 않는다. 북한을 둘러싼 외부 세력의 부정적인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은 데다 한국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경제적·외교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 남북한 간 거래가 ‘무조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도 이견은 작다. 비록 상호주의적 거래 비용과 거래 품목에 대한 이견은 있을지라도, 북한에 대해 조건 없는 거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넷째,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지속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이견은 없다. 북한의 아동·여성·고령자 등 주민에 대한 인도적 배려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절대적 빈곤의 해소나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동 보호,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에 대한 적정한 의료 보건의 제공 등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다섯째, 북한을 무시해버리자거나 통일이라는 대의를 버리자는 의견도 거의 없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돼야 할 같은 민족이며,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적 방법으로 하나 됨이 좋다는 의견에 딴지를 거는 이들은 적다. 지나치게 통일을 서두르거나, 무조건 북한을 끌어안자거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통일이 우선이라는 의견에 선뜻 동의하지 못할 뿐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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