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전 주 러시아 대사] 새해 벽두 북한의 고압적 응수 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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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평양에서 열린 8차 당 대회는 향후 북한의 행로를 정하는 계기였다. 배경에는 북한의 경제난, 대남 대미 관계 교착과 바이든의 등장이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정책에 전향적인 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주목할 내용과 미묘한 함의는 있었다.
경제 문제에 대해, 김정은은 5년 계획의 성과가 미진했음을 인정하고 새 목표를 제시했으나, 접근방법으로는 여전히 자력갱생을 내세웠다. 성과가 의문시된다.
군사 문제에 대해, 김정은은 군사력의 지속적 강화를 크게 강조하고 이를 당 규약에 박아 넣었다. 비핵화는 언급도 없었다. 아울러 전술핵과 중·단거리 미사일을 전략 핵과 장거리 미사일 못지않게 강조하였다. 김정은은 한반도 지역 위협을 주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전술핵을 부각시켰다. 전술핵의 타격 대상은 한국, 일본과 역내 미군 기지이다. 우리가 실감할 핵 위협이므로 주목을 요한다.
또한 김정은의 보고는 향후 북한의 무기 개발 방향을 알게 해주었다. 그것은 핵무기 소형화 경량화, 다탄두 유도기술, 극초음속 활공 무기, 고체연료 대륙간 탄도탄, 수중발사 핵전략 무기, 대륙간 탄도탄 명중률 제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 핵 잠수함과 정찰위성 개발 등이다.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실험을 예견하게 하는 대목이다.
대남 관계에 대해, 김정은은 남북 대결이 첨단 장비를 반입하고 합동 군사연습을 하여 남북합의에 역행한 남측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정은은 남측이 방역, 인도 지원, 관광 등 비본질적 문제를 가지고 접촉을 시도한다고 비판하였다. 김정은은 적대행위 중단과 합의이행을 요구하고, 남측이 움직이는 만큼 대응하겠다고 하였다. 남측이 비정상적, 반통일적 행태를 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할 때 관계의 새 길이 열린다고도 하였다. 남남 갈등을 겨냥한 말로 들린다. 한편 김정은은 해금강 호텔을 들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측 시설물에 대한 추가 조치가 예상된다.
대미 관계에 대해, 김정은은 미국에게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했으나,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문제라고 하면서, 이의 철회를 요구하였다. 김정은은 미국에 누가 집권하든 미국의 본심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고,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적 미국을 굴복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대남 대미 관계 부분을 총괄해 볼 때 북한의 입장은 경화되었다. 대화 재개에 대해 언급이 없고 무슨 제안도 없다. 대남 대미 관계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상대의 움직임을 보아 상응한 대응을 하겠다는 식이다. 이런 입장을 표명하면서 군사력 강화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구태의연하고 고압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북한은 도발 위협을 하지는 않았다. 나름 잘 계산된 행보다. 이로써 북한이 먼저 도발을 할 개연성은 줄었다고 생각된다.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에 응할 소지는 있어 보인다. 남북 대화 재개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 국면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적절한 대응이 중요할 것이다. 먼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북한과 막후접촉을 하기를 권하고 싶다. 북한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도발을 고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가 막후접촉을 통해 지난 4년간의 생각의 궤적을 서로 업데이트하고 상호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향후 협상에 유용할 것이다.
다음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판단해야 할 문제는 3월의 연합훈련이다. 훈련이 진행되면 북한은 대응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도발을 감수하고, 그 후 게임을 하느냐, 현실을 감안한 타협을 하느냐를 정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과정을 중시하는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대남 요구에 고심할 것이다. 북한은 합의이행 전반을 다그치고 있고 구체적으로 연합 훈련, 첨단 장비 반입, 미사일 역량 강화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북한은 스스로 핵, 미사일 및 재래식 전력 강화에 매진하면서 한미의 억지력을 문제 삼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 내 ‘반통일 세력’ 통제라는 무리한 요구도 했다. 만일 우리가 남북 대화에 몰입하여 북측의 요구를 맞추는 데 집중하면 국내 분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미 간 이견도 커질 것이다.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차라리 북미 대화 복원이 먼저 이루어지도록 한미 협의를 하고, 그러한 선순환의 분위기를 활용하여 남북 대화를 열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지금 남북을 치고 나가 국면을 선도하려는 것은 현책이 아닐 수 있다.
북한은 특유의 고압적이고 냉랭한 자세로 볼을 미국과 한국의 코트에 던져 응수를 타진하였다. 이제 우리 앞의 선택지는 잠시 열린 시간을 활용하여 대화를 복원하거나, 아니면 대화 없이 머지않아 닥칠 북한의 도발에 직면하거나 일 것이다. 대화가 복원되더라도 성과는 쉽지 않아 보이고, 이 또한 도발로 귀결될 소지가 있다. 좁은 선택지와 짧은 시간 여유 속에서 한국과 미국이 함께 최적의 응수를 찾아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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