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한미 북핵 협의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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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대외정책은 전략적 경쟁상대인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주로 구체화하고 있다. 백악관에 아시아 정책 차르를 둘 만큼 중국 문제는 중시되고 있다. 이제 미·중 대립은 냉전시기 미·소 대립처럼 전반적이고 압도적인 국제환경이 되었다. 한반도와 북핵 문제도 미·중 대립이라는 큰 구도 아래에서 다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도 미·중 대립 구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동맹인 한국에 대한 주문도 늘 것이다. 내주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함께 일본·한국을 순방하는 것도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규합 노력이다.
미국 쪽 동향이 이런 반면 우리 쪽은 대북 대화 복원에 마음이 급하다. 정부의 임기는 1년 남았다. 공 들여왔던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정체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정상회담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기대에서인지 그때의 진용을 자리만 바꾸어 재배치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하에서도 미·북 대화는 재개되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바이든이 들어왔으니 2018년 재현이 쉬울 리 없다. 그나마 비핵 평화 프로세스에 재시동이라도 걸려면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의를 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은 중국 문제를 중심으로 아시아 정책을 설계하고 있으니, 중국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부터 정립해야 대미 협의를 잘할 수 있다. 미·중 대결이라는 큰 구도에서 미국에게 설득력 있는 입장이 있어야 작은 구도인 북한 문제에 대한 대미 설득공간이 나온다.
사리가 이런데도 우리 정부가 중국 문제에 대한 입장 정립을 우선시하는 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역대 정부는 수십 년간 미·중 대립을 목도하면서도 대응원칙 수립을 회피하고 사안 별로 적당히 대처해왔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중국은 다투어 한국을 견인하려 했고 한국은 점점 더 강한 견인력 앞에서 흔들렸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의 처신에 불만을 키웠다. 중국은 한국을 더 견인할 수 있다는 기대 하에 압력을 가중했다.
이런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설 좌표와 나갈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각인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면 미·중의 기대치가 조정된다. 미·중 사이를 헤쳐 가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 작업을 계속 피하고, 바이든 측에 북한에 대한 유연 대응만 주문할 경우, 한국이 미국의 주 관심사는 외면하고 한국의 요구만 내세우는 셈이 된다. 과연 이렇게 하여 미국으로부터 국면타개 방안을 끌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러다가 북한이 도발이라도 하면 정부의 임기 동안 할 일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 다른 접근을 제기하고 싶다. 대미 협의를 원활히 할 종합적인 방안을 만들어 대처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첫째로 미·중 사이 우리의 좌표와 방향이 포함된다. 여기서 고려할 것은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고 중국은 동맹에 미치지 못하는 동반자라는 점이다. 또 가치 측면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크게 가깝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영향권 밖에 살면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유사 이래 가장 괄목할 성취를 이뤘다. 반면에 중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다른 대안적 가치를 선양하는 나라이다. 우리가 중국에 가까운 방향을 설정하면, 우리는 자주, 자유, 민주라는 가치를 타협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 좀 더 가까운 방향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지리적으로 가깝고 상호의존도가 깊은 중국과도 그리 멀지 않은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비유컨대, 미국이 우리를 3시 방향으로 당기려고 하고 중국이 우리를 9시 방향으로 당기려 한다면, 우리는 동맹인 미국에 가까운 1시 내지 1시 반 방향을 선택하는 식이다. 미국이나 중국을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좌표와 방향을 선택하자는 말이다.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선택을 하고 있다. 호주는 2시 반, 일본은 2시, 인도는 12시 반 정도이다.
둘째,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킬 방안도 포함하는 것이 좋다. 미국은 이를 반길 것이다. 우리가 징용 등 사안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고는 일본의 긍정 반응을 끌어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셋째, 중국과 일본에 관한 대응을 정립한 후에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미국 측과 협의하여 비핵 평화 프로세스 활성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 외교는 다시금 시험대에 섰다. 미국과의 정책 조율이 어긋나면 정부의 외교안보 성적표는 초라하게 된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중국과 일본에 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이는 그 자체로 대중, 대일 외교에 필요하고, 대미 설득에도 유용하다. 이것 없이는 중국 대처에 몰입된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바를 끌어내기 어렵다. 문제는 과연 정부가 이런 불편한 현실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느냐일 것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리셋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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