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미 동맹 축으로 한·중 관계 관리’ 메시지 분명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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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동아시아 새 판 짜기와 한국 대응
바이든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대중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동맹 강화를 씨줄로, 다자주의와 가치 외교를 날줄로 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틀 속에서 전개된다. 반중 여론이 75%에 이르고 중국 억지에 초당파적 지지가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전방위적 대중 압박 조치 중 상당 부분에서 연속성을 유지할 것이다.
미·중 관계는 안보·기술·인권·지정학 분야에서 경쟁·대립 기조이지만, 기후변화·팬데믹·경제 등 협조가 필요한 사안들은 협력을 꾀할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 한·미, 미·일 동맹과 미·일·호주·인도의 쿼드(Quad)를 강화하면서 한·미·일 3각 협력 복원, 쿼드 플러스 확장, 영국이 제안한 D10(민주주의 10개국) 등을 통한 유럽의 관여 등을 모색할 것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 대만·남중국해·위구르·홍콩 등 미·중 단층에서 충돌이 발생하거나, 복합 상황을 관리해가는 타협(modus vivendi)이 잠정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바이든 외교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동맹 중시는 도움이 되겠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부담도 늘어나는 만큼 정치(精緻)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의 중국 경사론 불식시켜야
첫째, 북한 핵무장 완성과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전략 환경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인 한·미 동맹을 강화할 호기를 살려야 한다. 수년간 피로 증세에 빠진 동맹의 상호 신뢰를 회복해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의 실효적 린치핀(핵심축)이 되도록 해야 한다. 4년 뒤 트럼프주의자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때를 놓치지 않고 바이든 정부와 동맹 기반을 튼튼히 해두어야 한다.
둘째, 트럼프 시대에 여지가 있었던 모호성의 이익은 불가능하다. 동맹 중시에 부응하는 명확한 위치 설정으로 신뢰를 쌓아야 우리 외교의 독자적 전략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관리한다는 점을 워싱턴과 베이징이 알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미·일 동맹 강화를 바탕으로 중·일 관계를 관리함으로써 미·중 양쪽에 일정한 전략 공간을 확보했다. 일본이 미국 주도의 클린 네트워크(5G 통신망 등에서 중국 기업 참여 배제)에 동참하지 않고 아시아판 NATO인 쿼드 플러스 추진에 반대할 수 있는 것은 전략적 신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셋째, 외교에서 인식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워싱턴·도쿄에 퍼진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조속히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에 앞선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나 중국 공산당 100주년 축하 같은 발언은 이에 역행한다.
넷째, 한반도 중심의 국지적 시각으로 외교를 풀어가는 자세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가 지배할 수 없는 지역·세계 변수가 우리 외교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고려한 전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역내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영향력이 가장 큰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인 것은 근시안적 접근의 대표적 사례다. 다행히 정부가 최근 방향을 전환했지만, 문제의 핵심인 강제 징용, 위안부 문제의 해결 방안과 현금화 방지에 구체적 진전이 필요하다.
다섯째, 북한을 다루는 데 희망적 사고나 경직된 이념에 빠지지 말고 있는 대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 제재·재해·팬데믹 삼중고에 빠진 북한이 여전히 경제·핵 병진 노선에 매달리고 지속해서 우리를 무시·도발하는 상황에서 대북 협력 노력은 의도와 달리 역효과만 난다는 점에서 ‘전술적 인내’로 임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 협조 체제 구축에 힘 쏟으면서 핵 동결, 비확산의 임시 합의로 사실상 핵무장을 용인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단계별 이행이 불가피하겠지만 비핵화 정의, 로드맵, 신고·검증의 3개 핵심 요소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한편 북핵 폐기 달성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비핵화(denuclearization) 노력과 억지(deterrence)·방어(defense) 능력 향상의 3D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실주의 바탕 외교 난국 풀어야
대미 협의를 통해 억지 수단으로 확장·억지 구체화, 전술핵 재배치, NATO형 아시아 핵기획위원회 설치, 방어 수단으로 한국형 미사일 방어의 대폭 보완과 한·미 미사일 정보 교환 제도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여섯째, 화학에서 ‘흩어지기 구조’처럼 혼란스러운 국제 질서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까지 무정형의 과정에서 각 주체의 선택과 행동이 결과에 중요하다. 상황 순응의 수동 외교가 아닌 상황 창출의 능동 외교가 필요하다.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중견 국가로서 상대를 움직일 지렛대를 늘려 선제 대응을 꾀해야 한다. 가교 역할에 유리한 우리 입지는 지역 다자 외교와 가치 외교에서도 유용한 지렛대를 만들 여지가 크다. 다층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혼돈의 대전환기에 코로나19의 여파로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된 초복잡계에 살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등장은 우리의 어려운 외교 환경을 개선할 절호의 기회다. 거시적 안목으로 냉정한 현실주의 바탕 위에서 현재의 외교 난국을 풀어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바이든 외교는 세계 지도력 회복, 동맹 중시, 가치 외교, 다자주의의 4개 핵심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수정주의 세력인 중국의 도전에 대항해 동맹국·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여전히 ‘으뜸의 지위(primacy)’를 지속하고자 한다. 그 수단으로 제도를 중시하는 다자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인권·환경·반부패 등 미국이 중시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외교를 통해 권위주의 세력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이려 한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교란적·거래적 외교 행태를 청산하고, 바이든 대통령 자신의 오랜 외교 경험과 풍부한 외교 인력을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바이든 외교는 국내적 고려가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경제·인종·정치·세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표방하고, 외교와 정치의 접점을 다루는 국내정책위원회에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임명했다. 정부 입찰을 미국 제품으로 제한하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이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에 중요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 지연도 이런 맥락이다.
또 무력 개입보다는 외교·개발·제도를 우선해 외교의 군사화를 억제할 것이다. 미국 다음으로 국방비를 많이 쓰는 10개국의 국방비 합계를 넘어서는 막대한 국방비를 감축하고 기후변화·팬데믹·사이버·국내 테러 등 새로운 안보 수요 증대에 맞춰 안보 정책을 재정립하고 해외 주둔 미군 재조정을 꾀할 것이다. 미국이 국제 문제에 있어 과도한 자원이 필요한 해결보다는 적절한 관리에 치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힘을 받을 것이다.
동맹국들은 동맹을 중시하는 ‘미국의 복귀’를 환영하지만, 트럼프 외교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트럼프주의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4년 뒤 트럼프 또는 유사 인물의 재등장에 대한 우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맹 중시는 동맹의 책임 증가와 동전의 양면 관계이므로 이를 원만히 조정할 과제도 있다. 특히 미·중 대립에서 동맹국들의 줄서기가 아닌 협조를 순조롭게 확보할 것인가의 과제도 쉽지 않다. 결국 2022년 중간선거까지 초기 바이든 외교의 성공은 국내 고려와 대외 정책의 충돌을 원만히 조정하여 동맹국 협조 체제를 구축할지 여부로 결정될 것이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부 차관·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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