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 3차 남북 정상회담 성공할 수 있나
본문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급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측에 비핵화 진전 없이는
제재가 풀릴 수 없음을 알리고
제재 해제 및 종전선언을
선차적 비핵화와 맞교환해야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9월 중 열기로 합의된 3차 정상회담의 무게는 이전과 다르다. 만남만으로도 국면 전환의 효과가 있었던 1차, 간이 회담 성격이었던 2차와 달리 세 번째 만남은 비핵화에 있어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회담이다. 경협 등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돼 아무리 많은 합의가 이뤄져도 비핵화의 성과가 없다면 국내외 여론은 싸늘해질 것이다. 3차 회담은 두 정상이 공연이 아니라 비핵화 비즈니스를 한다는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성공을 위한 출발점은 현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상태가 계속된다면 급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막은 것만으로 올 11월 중간선거에 임해도 불리하지 않다고 믿는 듯하다. 미국 입장에서만 본다면 안보 위협은 줄어든 반면, 손해본 것은 없다. 따라서 이 상황이 지속돼도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반면에 북한은 제재 때문에 고통스럽다. 최근 김정은의 ‘강도적 제재’라는 언급은 고통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비록 중국이 제재 뒷문을 열었다 해도 연명에 도움이 된 정도이지 성장은 꿈꿀 수 없다. 핵심 제재인 광물 금수가 풀리지 않는다면 경제는 계속 내리막일 것이다. 제재 전 북한 광물 수출은 전체 수출의 50%를 차지했다. 광물 수출의 이윤율은 80%에 달해 광물이 막히면 제재 전 외화 수입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다. 그 결과 내년엔 북한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일 수도 있다. 또 광물은 제재 대상 중 밀수가 가장 어렵다. 부피가 커 운반 수단이 제한돼 있고, 그 이동을 위성 등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의 선언문으로 볼 땐 ‘Kim Jong won(김정은이 이겼다)’이지만 구조로 보면 ‘Trump’s triumph(트럼프의 승리)’다.
우리 정부는 이 상황을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로 비핵화에 획기적 진전 없이는 제재가 풀릴 수 없고, 실질적인 남북 경협도 불가능함을 확실히 해야 한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제재 해제의 호기로 삼으려 할 공산이 크다. 외세 눈치 보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 결정하자며 한·미 제재 공조를 균열시키려 할 것이다. 이 전술에 남한이 끌려들어가 비핵화 전에 제재가 실제 완화된다면 비핵화 가능성은 더욱 멀어진다.
중앙시평 8/22
이런 면에서 최근 불거진 북한 석탄의 남한 반입 문제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광물 제재가 무너지면 비핵화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셈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범정부적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거의 매일 제재 상황을 점검했다. 지금 정부에선 이런 태스크포스가 사라진 것 같다. 이는 제재와 관련해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정이 내려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정부의 태만과 무능에 대한 질타는 당연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재발을 막는 것이다. 태스크포스를 부활시켜 제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정치적 고려 없이 제재 관련 결정을 내리게 하는 방안도 있다.
둘째로 선차적(front loading) 비핵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해 만들어야 한다. 최근 북한은 종전선언과 제재 해제를 비핵화 진전의 조건으로 꺼내들었다. 이는 김정은의 생존 코드인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응된다. 즉 체제 안위를 위해 핵을 가진 것이라면 종전선언으로 이 필요를 일부 충족할 수 있다. 또 제재 해제로 경제가 나아지면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의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이 요구에는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담겼을 수 있다.
우리는 제재 해제 및 종전선언을 선차적 비핵화와 동시 교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주한미군 주둔은 종전선언과 별도의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선차적 비핵화의 목표는 핵시설뿐 아니라 보유 핵무기·미사일·핵물질의 신고와 폐기 약속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정도가 아니고서는 미 행정부, 특히 의회가 이미 법제화된 독자 제재를 해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법이 있는 이상 대북 경협에 선뜻 나설 우리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북한을 뒤에서는 강한 제재로 밀고 앞에서는 비핵화 이후에 대한 구체적 합의로 끌어당겨야 한다. 이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효과적인 협상안을 만들어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경험이 보여주듯 이념에 갇히고 좁은 인재 풀에 의존한 정책을 펴면 다시 실패한다. 앞으로 몇 달이 선차적 비핵화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대통령과 정부는 얼마나 잘 준비돼 있나. 역사가 여기서 갈릴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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