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핵 폐기 힘들다는 현실 인정하고 플랜B 함께 추진해야
본문
한·미 공조 강화로 북핵 완전 폐기 추구하고
북한 핵무장을 굳히게 될 스몰 딜 막아야
한·미 핵 공유협정 등 핵에 의한 억지 나서고
3K전략 조기 완성과 함께 미 MD 참여도 검토
10월 초 개최된 스톡홀름 북핵 실무 협상이 결렬되면서 북핵 시계는 자정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사실상의 핵무장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북한은 선(先)제재 해제와 안전 보장 조치를 요구하지만,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의 틀 속에서 단계적 이행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추가 실무 협의에는 불응하면서 올해 말로 설정된 ‘새로운 길’ 시한을 앞두고 미사일 실험과 고위 인사의 구두 협박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핵 완전 폐기를 위한 기회의 창이 급속도로 닫히고 있다는 점에서 북핵 시계는 ‘자정 10분 전’의 위기상황이다. 북한이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수준의 사실상 전략핵 국가가 되어 핵무장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미 핵탄두의 경량화·소형화·다종화·표준화·양산화를 이루었고 발사 수단도 고도화되었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에 필요한 소재와 통제 기술을 개발하고, 2차 공격 능력에 필요한 100여개의 핵탄두를 확보하면 북핵 시계는 자정을 칠 것이다.
북핵 시계가 자정을 울리면 어떤 전략적 함의가 있을까? 첫째, 남북 군사 균형은 북한으로 기운다. 절대무기인 핵무장은 재래식 무기, 군사비 등에서 남한에 유리했던 한반도 전략 균형을 파괴한다. 북한 도발에 대한 우리 대응도 큰 제약을 받는다. 북핵을 이고 살면서 북핵 공갈·협박 위험에 늘 노출된다.
둘째, 한반도 핵전쟁과 무력 충돌 위험이 커진다. 한반도 긴장 속 한·미의 선제공격으로 핵 공격 능력 상실을 우려하는 북한이 오판으로 핵 선제공격을 하는 비대칭적 갈등 악화(에스컬레이션) 위험이 있다. 또 북한 핵 보유로 한·미 연합군의 대북 억지력이 제약되면서 대남 도발 유혹도 증가한다. 특히 북한은 유일 수령 지도체제 특성상 핵 통제가 김정은 개인에게 맡겨져 러시아·중국의 통제시스템보다 훨씬 위험하다.
북한은 한국과 미·일 떼어내려 해
셋째, 한·미, 미·일 분리(decoupling) 위험이 있다. 북한이 ICBM을 개발·배치하고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면 미국의 한국·일본에 대한 확장 억지·핵우산의 신뢰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핵 개발 논리처럼, 북한이 워싱턴을 위협할 때 미국이 서울이나 도쿄를 보호하기 위해 핵우산을 제공할지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은 ‘갓끈 이론’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미국 개입과 일본 지원을 막기 위해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을 추구해 왔다.
넷째, 핵무장 국가 북한은 동북아 전략 지형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된다. 전형적 불량 국가인 북한에는 핵무기 보유국 간 적용되는 ‘공포의 균형’에 의한 억지가 작용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북한의 호전적 무력 도발 역사에 비추어 ‘핵무장 북한’의 안보 위협은 더욱 엄중하다. 그리고 동북아에서 한·일만 미국의 핵우산·확장 억지에 의존하는 기울어진 상황이 초래된다.
다섯째, 동북아에서 핵무장 경쟁이 일어난다. 신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로 흐르는 미국 핵우산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일과 대만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 것이다. 대안으로 전술핵의 육상·핵잠수함 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중국·러시아의 대응 조치가 예상되어 역내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여섯째, 냉전 구조가 남아있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에도 신냉전 구조가 형성된다. 핵무장 북한에 대한 경제·군사 압박을 원하는 한·미·일과 북한을 지원하려는 중·러 사이에 대립이 증가하고, 한·미·일이 취하는 억지·방어 군사 조치에 중·러가 반발하면서 대립 구도가 심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의 길은 요원해진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여도 핵전쟁 위험으로 한국의 개입이 곤란할 것이다. 또 핵을 가진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개혁·개방의 길에서 멀어져 통일 여건 조성이 더 힘들게 될 것이다.
앞으로 북·미 실무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북핵의 완전한 폐기에 합의할 가능성은 작다. 북한은 핵 능력의 일부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을 제재 완화와 안전 보장과 맞바꾸려는 입장인데 이는 교섭 자체가 불가능한 방안이다. 지난 1년 반 북한 행보는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보기 어렵다.
불편한 진실 전제로 전략 새로 짜야
교섭 동력도 북한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과 민주당의 견제로 미국 내 입지가 위축된 가운데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뒀다. 핵·ICBM 실험 중지를 교섭 효과로 과대 선전해온 만큼 이를 유지하는 소극적 대응이나 동결에 치중하는 스몰 딜 도 마다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 유일한 대북 교섭 수단인 제재도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우회로를 늘리고, 중국이 관광 등 비제재 분야를 통해 지원하며 의도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미·중 대립이 거세지며 북·중·러 북방 삼각관계는 강화되고 한·미·일 남방 삼각관계는 악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치된 행동을 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북한이 최근 대남 창구를 피하고 미국만 상대하려 하면서 현 정부가 추구해온 중재자 역할도 불가능해졌다.
북핵 교섭 전망은 어둡고 북핵 시계는 자정을 향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북한의 핵무장 완성은 가깝고 북핵 폐기의 가능성은 작아졌다는 불편한 진실을 전제로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기본 목표가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에 있는 만큼 교섭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실패 시 대북 억지·방어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선행 시간을 고려한 차선책(Plan B)도 착실히 추진하는 이중정책이 돼야 한다.
북핵 교섭은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사실상의 핵무장으로 끝날 스몰 딜이 아닌 완전한 북핵 폐기를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모호한 비핵화와 안전 보장 개념을 명확히 하고, 시한이 설정되고 실효적 검증체제가 마련된 로드맵을 전제로 2, 3단계의 이행 과정을 밟아야 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신기루
북핵 폐기를 추동하는 수단인 제재는 단계별로 북한의 비핵화 회피를 막는 수순으로 완화하고 위반 시 자동 재개(snapback)를 부과해야 한다.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특히 열쇠를 쥔 중국이 철저히 제재를 이행하도록 다양한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북한의 안전 보장 문제는 핵 폐기의 최종 결과가 되도록 하며 한·미 동맹, 주한미군 문제와 분리해야 한다. 평양으로 가는 길은 제재로 인해 워싱턴·베이징·도쿄·모스크바를 통해야 하므로 우리로서는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또 북핵 시계가 자정이 될 때를 대비해 억지와 방어를 강화해야 한다. 한·미 동맹 약화는 게(비핵화)도 구럭(평화)도 다 잃게 되므로 동맹 관리에 힘써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 억지의 구체화 작업을 서두르고, 육상·잠수함 전술핵 배치, 한·미 핵 공유협정 등 핵에 의한 억지도 추구해야 한다. 방어 면에서는 기존의 3K(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대량 응징 보복)전략의 조기 완성과 함께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 참여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장기간 북핵 위협에 노출돼 민감도가 떨어진 탓인지 북핵 해결을 위한 결기가 부족하다. 안보가 흔들리면 경제도 흔들린다.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북핵 폐기와 철통 안보만이 국가 생존의 길이라는 절박함으로 국민 역량을 결집하여 북핵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김일성은 한국을 갓에 비유하면서 한·미 군사동맹과 한·일 공조체제 중 어느 한쪽 갓끈만이라도 잘라버리면 한국을 ‘입으로 불어도 날아갈 갓’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한국을 향해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돌아오라며, 한반도에 대한 미국 개입과 일본 지원에 반대한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사건·제품 등을 이르는 말. 경영계에서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같이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한 사람·기업을 가리키고, 정치적으로는 기존 정치 질서를 뒤흔드는 사건·인물을 말한다.
3K(3축 체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한국의 군사 전략. 킬 체인(Kill Chain, 북한 미사일 발사 전에 탐지해 공격하는 공격형 방위시스템),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요격 미사일로 격추), 대량응징보복(KMPR,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하면 북한 지휘부 응징 보복)의 앞글자를 땄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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