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내 마음속의 ‘왜놈’이 문제다
본문
화난다고 무시하면 상대 파악 못해
남의 인정 받는 데 목말라 있는 일본
경제·안보 파트너 대우해야 풀린다
대통령 8·15 기념사 대화 제의하길
자유분방하고 전복적인 지식인 연암(燕巖) 박지원에게 18세기의 조선은 숨막히는 중세의 감옥이었다. 그가 돌아온다면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을 ‘왜놈’이라고 무시하는 21세기 한국의 내면 풍경에 “아직도…”라며 좌절할 것이다. 물론 문명국가의 존엄성을 유린한 식민지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일본 극우의 퇴행도 신랄하게 공격했을 것이다.
연암은 1780년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사절단의 일원으로 다녀와 쓴 견문록 ‘열하일기’에서 청(清)의 연호인 ‘건륭’을 사용했다. 명(明)은 망한 지 130여 년이 지났지만 조선에서는 건재했다. 조선은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 ‘숭정’을 쓰면서 소중화의 주인공 행세를 헸다. 시대착오적 허위의식이었다.
그는 북벌(北伐)의 대상인 청을 ‘되놈’이 아닌, 조선이 만성적 빈곤을 타개하기 위해 본받아야 할 나라로 평가했다. ‘열하일기’는 명분과 관념에 포획돼 살아 꿈틀거리는 천하의 현실을 외면한 조선의 각성을 촉구한 문명비평서였다. 하지만 노호지교(虜號之藁·오랑캐 연호를 쓴 불온원고)로 몰려 조선이 일본에 망한 뒤인 1911년에야 활자로 간행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현실에 직면한 우리는 먼저 상대의 실체와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일본은 잘쓰면 약, 못쓰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처와 분노로 가득 찬 가슴이 일본을 ‘왜놈’이라는 허위의 프레임에 가둬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오리무중이 된다. 상대는 의사가 환자 다루듯 우리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의 이익이 될지는 자명하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내 마음속에서 ‘왜놈’을 깨끗이 지워야 한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거울에 비춰볼 때 확실하게 파악된다. 미국과 전쟁도 했지만 미국의 마음을 사는 데 도가 통한 나라가 일본이다. 미국은 한·일 관계를 설계하고 좌지우지하는 나라다. 그래서 미국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국을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일본은 믿는다.
지금 아베의 일본과 트럼프의 미국은 사실상 한통속이다. 한국이 아무리 읍소해도 미국은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보다 경제력과 정보력이 부족한 우리는 미국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미국과 갈등했던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를 민감한 시기에 주미대사로 기용하려다 무산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트럼프가 동맹인 한국을 때리면서 김정은의 편을 들고, 북한도 우리를 따돌리는 현실은 또 무엇인가.
우리와 달리 일본은 필요할 때마다 미국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1905년 을사늑약 직전의 장면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04년 ‘미국화한 명예 아리아인의 표본’인 가네코 남작을 파견해 하버드 법대 동문인 루스벨트를 구워삶았다. 주미 일본대사는 루스벨트를 ‘일본 치어리더’라고 본국에 보고했다. 물정 어두운 고종은 미국에 매달렸지만 일본을 키워서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다.
일본은 수년 전부터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메시지를 워싱턴을 향해 줄기차게 발신했다. 2차대전 A급 전범용의자가 세운 사사카와 평화재단 미국지부가 움직였다. 책임자는 미국인이다. 오바마 행정부 국가정보국(DNI) 국장 출신인 데니스 블레어다. 일본이 미국을 다루는 방법은 한 세기 전보다 진화했다.
일본은 한국의 약점을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시키고, 한일협정의 틀을 깬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방관한 것을 보복의 구실로 삼았다. 여기에 삼성,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의 D램 반도체 회사인 미국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공장 증설이 완료된 시점을 선택했다. 미·일 연합군의 협공을 노린 것이다.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까지 파기하면 한·미·일 삼각동맹은 심각하게 흔들릴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탈(脫)일본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 부품회사들은 해외에서 생산해 한국에 우회 수출하겠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양국이 모두 패자가 된다.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리스크에도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 지혜롭게 출구를 찾아야 한다. ‘왜놈’ ‘조센징’식의 반일, 혐한몰이는 두 나라의 공멸을 부를 뿐이다.
문 대통령은 8·15 기념사에서 아베 총리에게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10월 22일의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도 참석하면 좋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어받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100년 전 3월 1일 독립선언서에서 일본을 배타적 감정으로 단죄하지 않았다. 동양평화와 세계평화 건설에 함께 나서자고 했다. 지금 일본은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받는 데 목말라 있다. ‘왜놈’이 아닌 2차대전 이후 크게 성장한 문명국이자 경제·안보의 파트너로 대우하면 문제가 풀린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협량(狹量)을 용서하고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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