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교수] 난마의 한국외교, 난항의 대한민국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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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유명한 두 대사가 머리를 짓누르는 나라 형국이다. “재앙은 하나씩 오지 않고 한꺼번에 무리 지어 몰려온다.” “불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정말로 재빠르게 연달아 일어난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다. 오늘의 난마 같은 외교 상황과 난항에 직면한 대한민국호의 전도에 걸맞은 말이다.
먼저, 21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특징은 이른바 동아시아 패러독스다. 경제·무역·학생·취업·교류의 급증과 상호 반감·혐오·민족주의의 증대의 병진과 공존이다. 상호 접근과 상호 혐오가 함께 증대하는 이 기묘한 역설은 동아시아 각국의 성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만하다. 즉 국가 성공으로 인해 누구도 선제양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동아시아 상황과는 또 다른 독자적 차원을 갖는다. 우선 북핵 문제의 해결 기미가 난망하다. 핵무기를 상수화하려는 북한의 오랜 전략이 국제관계의 격동적 길항과 맞물리며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북한은 남한의 대북지원도 거부하고 남한 지도자를 계속 비난하며 남북관계도 단절한 채, 북·미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민족주의나 남북관계를 통한 문제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당혹과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조급한 반응은 한국의 급속한 발전과 추격에 대한 경쟁의식의 발로라는 점에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전쟁범죄·인권·과거사 문제에 대해 경제보복으로 대응하는 것은 매우 비대칭적이고 옹졸하다. 특히 한·일을 연결하는 가장 튼튼한 끈이 경제·산업·기술·무역 영역이었음을 고려할 때, 즉 다른 부분은 매우 약한 고리로 묶여있음을 유념할 때 일본의 조치는 예외적 돌발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목표와 전략이 ‘찔러보기’와 ‘충격주기’와 ‘바로잡기’를 넘어 한국 ‘떼어내기’라면 문제는 전연 달라진다. 몇몇 징표들은 날카롭게 경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중재 요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일단 불수용으로 나타난다. 대결하는 당사자의 한쪽 제안에 대한 소극적 불수용이 응낙과 거절 중에 후자로 접근한다는 점은 이론적 경험적으로 상세히 규명된 바 있다. 미국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중재를 아직 시도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요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 워싱턴을 집중 방문한 한국 고위관료들에 대한 미국 관료들의 응답, 방한한 국가안보보좌관의 방위비 요구 의제와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의 단기 반응은 분명하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한국 고위관료의 의중 표출과는 반대되는, 신속하고 분명한 ‘유지’ 입장 표명과 대비되어 미국의 균형추는 기울어져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흐름들이 동아시아 질서 격변의 한 표출이 아닐까 하는 깊은 우려다. 일본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미국 역시 6월 1일 발표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와 번영의 초석’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동 보고서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범주와는 한 번도 함께 언급되고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핵심’으로 언급된다. 중요한 차이다.
이른바 ‘도서방어 전략’ 대상의 안과 밖을 구별한 1949년 12월 미국 국가안보회의의 국가안보전략 문서(NSC 48/2) 및 1950년 1월의 애치슨 국무장관 연설 이래 미국이 이토록 명확하게 한국과 일본의 전략범주를 구별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특히 러·일전쟁, 공산 중국 인정,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영국의 일관된 한국 희생·한국 손해 정책과 역할을 깊이 돌아볼 때, 보리스 존슨의 영국 총리 당선으로 새로이 형성될 트럼프·존슨 관계와 인도·태평양 전략, 그리고 일본으로 이어지는 국제지형에서 한·일관계에 관한 한 한국은 고도로 경각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이 어려운 상황과 시점에 러시아는 한국전쟁 이래 처음으로 중국과 연합하여 한국 영공을 침범하였다. 한국을 상대로 한 중·러 연합훈련도 한국전쟁 이후 최초다. 침범 지역도 하필이면 미국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한·일 분쟁의 원초적 씨앗이 뿌려진 독도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난감한 급소다. 물론 중국은 이미 북·중 동맹을 복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시로 침범하고 있다.
한반도에 관한 한, 탁월한 연구들이 잘 밝혀내었듯 다른 주변국가들에 대한 정책들처럼, 러시아는 천천히 움직이되 한번 움직이면 아주 큰 자국과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약해 보일 때조차 그러하였다. 그러한 러시아가 중국과 함께 연합군사행동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동맹과 국제관계에서 가장 약한 한국 영공을 침범하였다.
지금은 안전과 평화, 발전과 번영을 위한 새 눈이 절실하다. 갈래와 갈피, 목표와 방향을 정녕 잘 잡아야 하는 혼돈 국면이다. 한국문제는 언제나 세계문제였다. 지금이야말로 ‘문재인 독트린’이 절실하다. 결코 늦지 않았다. 무엇이 문재인 독트린이어야 하나? 민영환 이래의 선현들의 지혜를 통해 찾아보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김대중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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