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만학 경희대 교수] 한반도 비핵평화의 ‘D데이’를 잡자
본문
선비핵화 vs 단계적 이행 갈등
남·북·미 적대·불신 해결 위해
2020년 10월을 D데이로 삼아
비핵화·평화번영 동시 가동해야
권만학 한반도평화만들기 한반도포럼 운영위원장·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북으로 그리고 남으로 넘음으로써 ‘한반도 비핵평화 대장정’ 드라마는 시작됐다. 4·27 판문점 선언이 여전히 갈등적 주장들을 외교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합의한 것은, 몇 개월 전 ‘화염과 분노’, ‘전면적 파괴’ 수준으로 한반도를 뒤덮던 전쟁 공포보다 백번 낫다.
한반도에서는 지금 분단 이래 최초로 평화로 이행할 수 있는 역사적 창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의 알파요 오메가인 북한 비핵화는 ‘길동무’가 된 두 사람이 한번 들어서면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만듦으로써 가능하다. 이 드라마의 대단원을 비극적인 ‘대사기극’이 아니라 ‘빅딜’을 통한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것은 주역들의 지혜에 달려 있다.
현재 북핵 정세는 방휼지세(蚌鷸之勢)이다.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는 도요새의 부리를 조개가 물고 늘어지면서 둘 다 어부의 식사 거리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항해 북한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핵·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맞섰다. 파멸이 엄습하는 순간 궁즉통(窮則通)은 등장했다.
북핵 문제의 핵심은 한·미와 북한 사이의 적대성과 상호 불신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적대성은 평화번영으로 대체하고, 이행 과정은 일방적 배신이 어려운 방식으로 설계하면 된다. 평화번영의 내용은 2005년 6자회담 9·19 합의에 대부분 들어 있다. 다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한·미는 선(先)비핵화를, 북한은 단계적 이행을 요구함으로써 파행선을 그어온 것이 지난 30년 북핵 역사다.
“력사의 출발점”을 떠난 지금 이러한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일방주의는 그만둘 때가 됐다. 적대성과 상호불신 문제는 ‘D데이 방식’의 한반도 평화 만들기 대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 방식에서는 결정적 해결 날짜를 2020년 10월 3일에 맞추고 주요 해결책에 대해 동시다발적 협상을 개시한다. 즉 북한의 완전 비핵화(CVID) 축과 평화(평화협정, 북·미 국교 정상화, 남북한 기본 조약 및 군축, 동북아평화포럼)와 번영(대북 제재 해제, 대규모 대북 경협) 축을 동시에 가동한다. 비핵화 축에서는 D데이까지 핵시설 폐쇄를 완료하고, 이날부터 북한 핵무기를 미국으로 반출하여 3개월 이내에 완료한다. 평화번영 축의 합의 또한 이 날짜로 발효시키며 핵무기 반출 완료와 함께 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대규모 경협을 개시한다.
시론 4/30
이렇게 하면 미국은 실질적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 일거에 CVID를 얻게 되는 셈이고, 북한은 비핵화 중간 단계에서 안보 보장과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합의문 형태로 얻게 되며, D데이가 되면 이 합의들이 전면 이행됨으로써 단계적으로 평화번영을 달성하는 셈이 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는 진정성에 따라 중도에 적절한 규모의 잠정적 경제 원조를 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중도에 비핵화 과정을 좌초시킬 경우 경제 원조를 중단하면 제재는 원형 그대로 작동하게 된다. 북한도 비핵화 과정에서 세계로 공표되는 평화번영 합의들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무게 중심을 D데이에 둠으로써 대장정 과정에 들어서면 비핵화를 중단하고 과거로 돌아갈 경우 즉각 파멸적 고통과 비용이 엄습하지만, 미래로 나아갈수록 안보와 혜택은 대폭 증대한다는 데 있다. 이 방식은 비핵화를 무산시킬 수 있는 ‘세부사항의 악마’를 억누르고 미래로의 전진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이 예정된 2020년 역사적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면 한·미 대통령 모두 한반도 비핵평화에 진력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건설에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북한 노동당이 일정을 앞당기려 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1970년대 말 땅과 평화를 두고 철천지원수처럼 대립했던 중동에서 왕복 외교로 일방적 배신의 불안을 해소했던 키신저의 조크가 새롭다. 그의 목표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유대인 은행가 가문 로스차일드의 딸과 가난한 팔레스타인 청년을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로스차일드를 찾아가 딸을 가난하지만 총명한 이 청년과 결혼시키자고 제안한다. 로스차일드는 터무니없다며 그 청년이 혹시 세계은행 부총재라도 된다면 좋다고 말한다. 키신저는 세계은행 총재를 찾아가 로스차일드의 사위를 부총재에 임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극적인 결혼은 이렇게 성사된다.
1990년 10월 3일 극적으로 찾아온 동·서독 통일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꼭 30년, 한반도에 대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면 개천절은 신화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하늘이 다시 열리는 실화가 될 것이다.
권만학 한반도평화만들기 한반도포럼 운영위원장·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