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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 비핵화 중간평가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8-07-11 14:43    4,844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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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구조적 문제에 직면
군사적 옵션·경제제재 부상 입고
난관 돌파할 새 방안 보이지 않아
정부는 낙관적 해설가로 바뀐 듯
창의적 해법 없이는 한반도 미래
암울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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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합쳐 필자가 매긴 성적은 ‘B0’였다. 핵심 주제인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 내용이 없었다는 점은 C 이하를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바람직한 남북과 북·미 관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A를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B0 옆엔 ‘추후 제출할 과제물 내용에 따라 최종 성적은 A+ 혹은 F가 될 수도 있음’이라고 써두었다.

며칠 전 미국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회담 결과를 보고 필자는 성적을 B0에서 B-로 내렸다. 아직 최종 성적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성적이 올라가기보다 내려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후속 회담 결과는 미국과 북한이 얼마나 구체적이며 신속하게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가늠자였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6월 회담에서 두 정상이 서명한 공동성명 외에 미·북의 물밑 합의가 존재했다면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평양회담 결과는 물밑 합의도 없었을뿐더러 로드맵 만들기도 난관에 봉착했음을 시사한다. 

사실 난관은 예견된 것이었다. 비핵화 거래 대상과 조건을 둘러싸고 미·북의 입장 차가 워낙 큰 상태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온 주된 이유는 경제제재였다. 지난해 3월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제재는 올해 하반기께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었고, 그때 협상이 이뤄져야 비핵화 과정이 보다 순조로웠을 것이다(필자의 중앙일보 ‘퍼스펙티브’ 1월 22일자). 4월의 남북 정상회담이 전쟁에 대한 우려를 없앤 것은 사실이지만 비핵화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 시기가 너무 일렀다. 

남북 정상회담 후 북·중 밀착 가능성을 우리 정부가 사전에 내다보고 대응하지 못한 점도 패착이었다. 들뜬 분위기에서 북한 친미화(親美化)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북·중 정상회담으로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될 경우에 대비한 ‘보험’을 북한에 제공해 주고 제재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북한의 협상력은 자칭 거래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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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칼럼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미국이 아무것도 양보한 것이 없다고 했다. 김정은을 신뢰하지만 효과가 없다면 정상회담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최대의 압박, 즉 군사적 옵션과 경제제재를 다시 사용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옵션은 치명적 중상을 입었다. 북한이 더 이상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는 한 세계 어느 나라도 대북 군사 공격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인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는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광인(狂人) 전략’이 이제 국제 정치인으로 등장한 김정은과 준(準)정상국가로 인정받은 북한을 대상으로 더 이상 통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제재는 경상을 입었다. 중국이 드러내 놓고 유엔 제재를 위반하긴 어렵다. 그러나 감시하기 어려운 품목의 무역과 합작투자 및 밀수는 쉽게 눈감아 줄 수 있다. 북한 경제의 연명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물론 유엔 제재의 핵심인 광물 수입 금지는 중국이 계속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부피가 커서 운반과 선·하적 때 감시망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광물 금수만 유지돼도 제재 이전 북한 수출과 외화 수입의 50% 이상이 막힌다. 그러나 미·중의 제재 공조가 유지되면 2년 내 끝낼 수 있는 비핵화 협상이 공조가 균열될 경우에는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대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제재 동참 의지를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북한 비핵화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이전에 북한을 움직였던 수단은 부상을 입었다. 트럼프의 신무기인 신뢰가 작동하면 좋으련만, 타국 정상의 선의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사회과학 교과서를 고쳐 써야 할 판이다. 현재 미국의 비핵화 접근법에는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목표는 CVID(완전, 검증 가능, 불가역적 비핵화), 제재는 지속, 비핵화 후 북한의 미래는 밝을 것임’이라는 원론만 되풀이할 뿐 각론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했다. 북·미 정상회담 이전까지만 운전하겠다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요즘은 조용한 관찰자 내지 낙관적 해설가로 자리를 바꾼 듯하다. 좋은 운전자는 길이 막힐 경우를 대비해 다른 안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나. 이대로 가면 C 이하로 낮아질 비핵화 최종 학점처럼 창의적 해법 없이는 한반도 미래가 암울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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