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고려대 교수] 우크라이나전쟁,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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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한국 사이의 외교적 균열이 불거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의 한국 이송을 공개하자, 정부가 비공개 합의 위반에 항의하며 대사를 소환했다. 한국 항구를 거친 대러 연료 운송 보도까지 더해지며 한국의 대러 정책과 국제적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 사안은 국내에서 보수와 진보 간 정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대중 매체와 온라인 담론에서는 “젤렌스키의 욕심과 무능이 전쟁을 끌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실리”라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우크라이나를 주권국보다 강대국의 세력권 아래 공간으로 바라보는 오래된 관성도 겹쳐 있다. 국익을 따지는 비판은 필요하나, 지도자의 성향이나 단편적 힘의 서사로 사안을 축소하면 사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나토(NATO)의 동진이 러시아의 위협 인식을 자극했다는 구조주의적 설명은 유효하나,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중·동유럽이 나토행을 택했는가’이다. 냉전 종식 후 이들이 집단방위 체제를 택한 것은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선 최선의 주권적 선택이었다. “나토 확대를 막겠다”며 일으킨 전쟁은 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라는 역설을 낳았다.
나토와 유럽의 모호함은 화를 키웠다. 구체적 일정 없는 가입 약속과 크림반도 강점 이후의 미온적 대러 제재는 우크라이나를 ‘외교적 진공 상태’에 방치했다. 전면전은 없을 것이라는 안이함과 미국의 안보 우산이 영원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의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이 전쟁은 단순한 강대국 대리전이 아니라, 러시아의 속국으로 다시 남을 것인지, 유럽의 일원으로 재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독립전쟁이자 정체성 전쟁이다. 비록 막대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누구로,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결단을 배제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가 결코 존경받는 나라는 아니었다. 만연한 부패와 과두재벌, 취약한 거버넌스는 오래된 병폐였다. 그러나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비아냥에 앞서, 기성 정치의 무능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왜 젤렌스키를 선택했는지 물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전란 속에서 정치체제를 유지하며 국가 해체를 막아내는 사실은 결코 폄하될 수 없다. 어쩌면 우리 국내 정치 눈높이에 맞춰진 젤렌스키에 대한 가십성 논의가 우리를 최선의 선택으로 이끌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개인적 악연, 중간선거 등 미국과의 관계가 꼬여있고, 유럽은 쇠약해졌다. 우크라이나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지도자를 비판하고 지원 축소를 논할지언정, 이것이 무력 침략을 정당화하거나 약소국의 자결권을 깎아내리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 전쟁에는 분명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강대국이 무력으로 국경을 바꿀 수 없다는 규범은 과거 약소국이었던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1945년 얄타에서 강대국들의 거래로 한반도 신탁통치가 손쉽게 결정됐던 상황을 기억한다면, 주권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약자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이 국제규범과의 최소한의 공감대다.
한국의 입장이 국제사회에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포로 이송을 비공개로 추진한 데에는 포로와 가족의 안전, 한반도 정세에 대한 신중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핵·미사일과 북·러 동맹의 위협 아래 있는 한국이 왜 대북·대러 관계 개선에 그렇게 조급한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포로와 가족의 안전을 ‘인권의 언어’로 설득한다면 공감을 얻겠지만, 북·러 군사협력에 침묵한 채 관계 개선만 서두른다면 한국의 입장은 ‘원칙’이 아닌 ‘모호함’으로 평가받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러 제재 유예에 반색하며 입장 선회에 나서기에 앞서, 미 의회 및 우방국들과의 일관성도 조율해야 한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제재 동참으로 치른 비용은 외교의 ‘신뢰자산’으로 환산되고, 안보와 경제의 안전판이 된다. 한국은 2028년 G20 의장국을 맡으며, 내년부터 트로이카 체제의 일원으로 다자외교의 주연으로 나선다. 공급망과 방산의 성장 속에 한국이 어떤 원칙과 신뢰를 보여주는지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외교적 갈등은 조용한 톤으로 풀어내야 한다. 정치는 분노할 수 있지만, 외교의 본질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 여파를 계산하는 데 있다. 실용이란 매 순간 가장 유리해 보이는 단기적 선택을 더하는 계산법이 아니라, 때로는 싫은 것도 참고 삼킬 줄 아는 용기다.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데 머물지 않고, 약소국의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와 신뢰에 왜 중요한지 성찰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격앙된 감정이 아닌 차가운 이성과 능숙한 외교력이다.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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