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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북한 환율 급등, 위기의 전조인가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4-08-14 10:38    38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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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달러당 8000원대 초반이었던 북한의 시장 환율이 8월 초 1만5000원을 기록한 것으로 복수의 전문 매체가 보도했다. 올해 들어 환율이 80%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쌀과 휘발유 가격은 각각 18%, 46% 올라 아직 환율 상승 폭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환율이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환율 급등은 물가 폭등의 전조일 수 있다. 작년 말 북한 주민 소득은 2016년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명목소득이 오르지 않고 물가만 2배로 뛴다면 올해 주민의 실질소득은 2016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다. 


경제는 김정은의 기대와 반대로 흐르고 있다. 올해는 그에게 2017년 이후 최고의 해가 될 수 있었다. 작년의 농업 작황도 괜찮았던 데다 코로나가 끝나 무역이 재개되고 러시아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가능해졌다. 그러다 환율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초인플레이션까지 발생한다면 민심 이반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폭우로 불어난 강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소형 보트까지 탄 모습은 민심을 향한 그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경제 문제가 왜 이렇게 꼬였을까.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러나 북한 책사와 관료는 계획과 시장이 뒤얽힌 자신들의 잡탕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버거울 것이다.

환율 폭등은 두 가지 가설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뻥튀기 작전’의 실패다. 북한은 작년 말 근로자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3000원 정도여서 시장 환율로 환산하면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던 평균 월급을 3만∼5만원 수준으로 수십 배 올린 것이다. 주민을 시장 대신 공식 직장에서만 일하게 만들어 사회주의 경제를 복원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시장 활동으로 30만원 이상을 벌던 주민이 공식 직장에서만 일하려 할까. 재원 조달도 큰 문제다. 통화 증발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재원을 조달할 방안은 없을까. 경제 책사들은 외화를 원화로 교환하여 임금 인상에 투입하면 통화량 증가를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러시아에 무기를 팔고 받은 외화나, 식량과 에너지를 들여옴으로써 절약한 외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만으로써는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환율 뻥튀기’를 통해 외화를 더 많은 원화와 교환하는 꼼수가 필요했다. 물가에도 영향이 없다고 믿었다. 민간에서 흡수한 원화를 임금으로 지급하면 민간 보유 원화 화폐량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뻥튀기 작전’은 성공하기 어렵다. 북한이 자급자족 경제가 아닌 한 원화 절하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이는 국내 생산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산 식량과 석유를 싼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공식 가격보다 시장 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식량과 석유의 상당량은 정부 판매 경로에서 빼돌려져 시장에 팔릴 것이다. 더욱이 전쟁이 끝나 러시아의 경제 지원마저 중단된다면 그동안 억눌렸던 물가가 폭등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외화가 계속 들어와야 이 작전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외화가 있어야 원화와 교환해 ‘물가 중립적(?)’으로 근로자의 높아진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외환보유고는 감소하고 있다. 전쟁이 종결되면 추가적인 외화 수입도 사라진다. 외환이 바닥나 필수적인 재화의 수입이 어려워지면 경제뿐 아니라 국가 기능마저 중단된다. 결국 이 작전은 지속될 수 없다.

환율 폭등이 정권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라는 가설도 가능하다. 2013년 이후 작년 말까지 달러당 시장 환율은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8000원 정도로 일정했다. 관료는 이 환율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20×10’, 즉 20개 지방에 10년 동안 해마다 경공업 공장을 건설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더 우선이었다. 이를 수행하려면 자재와 기계 장비 등의 수입이 불가피했다. 외화가 부족한 정부는 늘어난 외화 수요의 상당 부분을 돈주 등 민간에서 조달하려 했다. 무역 활성화에 대한 기대로 민간의 외화 수요도 늘어났다. 반면 외화 공급은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2021년 하반기에 시장 환율을 달러당 5000원가량으로 만들어 민간이 보유한 외화를 정권이 값싸게 흡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 환전상을 단속하자 리스크를 반영해 환율이 더 올라버렸다. 이렇게 되니 ‘어차피 오른 환율을 이용해 보자’는 생각에 정책 실수를 ‘뻥튀기 작전’으로 전환했을 수도 있다.

독재 체제의 운명은 보통 전쟁이 아니면 경제로 결판난다. 독일 히틀러 정권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소련은 후자에 속한다. 소련의 아킬레스건은 경제였다. 다른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주의 국가와의 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데다 자유마저 없는 체제를 유지하려니 감시와 억압, 선전과 선동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다. 북한의 아킬레스건도 경제다. 경제가 나쁘면 민심은 떠난다. 지금 북한의 민심은 김정은을 따르고 있나, 아니면 버리고 있나. 그의 경제정책도 오히려 그를 배반하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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