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한반도평화워치]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폭풍…‘강요된 화해’ 지속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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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뒤 후폭풍이 거세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 좀처럼 가라앉지 않던 파장은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싼 충돌과 맞물리며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마저 반쪽짜리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두 쪽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일반적인 외교 협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안은 이렇게 큰 파장을 남길 정도로 잘못됐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된 이후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논란이 정쟁화되어 파장이 커져 버렸다. 불신과 정쟁화를 야기한 원인은 윤석열 정부가 한·일 역사 문제를 대하는 시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교부는 일본의 강제 동원에 대한 제 3자 변제로 개선된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양국의 화해를 증진시킨다는 기본 방침에 따라 사도광산 등재 협상에 임했다. 정부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이른바 ‘국익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 방침에 따라 일본과 협상을 진행했고, 상대와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타협하고 마침내 등재에 찬성하는 합의에 도달했다. 이것은 외교부가 제공한 보도자료와 관계 당국자의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도자료는 한국이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한 이유를 설명하며 일본 대표의 관련 발언을 소개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전시를 하고,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하며,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약속들을 명심할(bearing in mind)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또 일본의 이런 약속 이행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고, 향후 매년 사도섬에서 추도식을 개최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정부가 이런 보도자료를 내놓자 국익보다 상처 치유를 우선시하는 이른바 ‘치유론자’들은 반발했다. 강제성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어 2015년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때 일본이 인정한 ‘강제동원’이라는 지고의 명분을 지키지 못해 오히려 합의 내용이 후퇴했다는 게 이유다.
이런 반발 움직임이 일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 왔다. 정부는 일본의 동원 강제성 표현은 협상 대상이 아니었고, 이미 2015년에 확보한 강제성 명분을 전제로 이번 협상에서는 일본의 실질적 조치를 확보하는데 협상력을 집중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보다 진전된 성과를 얻었다고도 했다. 지난달 2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양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강제동원 문구를 사용하지 않기로 사전에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하자 외교부는 곧바로 사전 합의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부는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초 설명과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스스로 의심을 산 것이다.
자연히 국익론자와 치유론자의 정쟁은 한층 가열됐고, 국내 진영 갈등으로 서로를 자극하며 파생적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저자세 외교’, ‘굴욕적 외교 참사’, ‘제2의 경술국치’, ‘정신적 내선일체’, ‘친일 매국 밀정 정권’ 등 극단적 표현도 등장했다.
외교부가 이런 국내 갈등과 분노, 상처를 남길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후과를 가져올 것이란 예상은 했었을까. 외교부가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강제동원’이라는 네 글자의 무게감을 모르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임을 자인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반면 외교부가 이런 후폭풍을 예상하고도 한·일 양국의 화해에 방점을 두고 이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오판이다. 나는 이러한 오판을 ‘강요된 화해’라고 정의하고 싶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에서 국론이 분열하고, 양국의 갈등이 악화되는 ‘지체된 화해’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제 3자 변제를 결단했다. 이번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고, 나아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화해의 진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광복절 직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죠.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라는 발언은 안타깝게도 국민 분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한·일 화해를 진전시켜 가다 보면 국민 화합도 따라올 것’이라는 신념으로 화해 정책에만 몰두한다는 건 화해에 대한 강요라 할 수 있다. 국민 분열을 담보로 하는 식의 화해 시도는 지속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일 화해는 국민 화합과 보조를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 어차피 국민 화합이 어렵다는 일방적 판단으로 대국민 설명과 설득을 포기하는 건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 일본에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윤 대통령이 한국 국민의 화합을 진행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반대론 설득하고 포용해야
외교부의 당시 보도자료를 다시 꺼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을 복기해 봤다. 정부의 설명은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보다는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국익론자나 적어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 중간 지대 사람들을 향한 발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도자료와 정부의 설명 대상은 치유론자들이어야 했다. 그들에게 선제적으로 배려하며 겸손하게 설명하고 설득에 나섰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강제동원의 명분을 온전히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문제의 연원이 1965년의 한일조약에서 시작하는 만큼 우리는 일본 강제동원 표현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고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실익을 챙기면서 한·일 화해를 진전시켰습니다. 이번 협상이 만족스럽지 못할 것입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치유론자를 포용하는 진정 어린 자세 전환과 국민 화합을 향한 노력 없이 한·일 관계를 국익론에만 기대 ‘강요된 화해의 길’로만 간다면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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