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섭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세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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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전문 저널리스트인 애니 제이컵슨(Annie Jacobsen)이 최근 『핵전쟁 시나리오(Nuclear War: A Scenario)』라는 책을 발간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을 공격하는 가상의 내용을 다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전략핵무기로 북한에 반격을 시작하자 미국의 핵무기가 자국을 향하는 것으로 오인한 러시아는 미국 본토를 향해 모든 전략 핵무기를 발사하고, 미국은 이에 대한 확증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전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자칫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미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의 전략핵무기로 북한에 대량보복공격을 가해 북한 정권이 지구상에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핵과 관련해 질과 양적으로 절대 우세한 미국의 핵으로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한다는 전략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전략 핵무기로 대량 보복 공격을 할 경우 이익보다 손해가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이컵슨의 시나리오가 제시하고 있다.
북, 여덟 가지 전술핵 투발 수단 과시
미국은 옛 소련(러시아)과 핵 경쟁 당시 핵무기 공격을 받으면 상대방에게 전략 핵무기를 동원한 더 큰 공격으로 맞선다는 교리를 만들었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라는 핵 보복 전략이다. 이 교리가 북한의 핵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북한의 전술핵에 미국이 전략핵으로 대응한다면 비례성의 원칙에 맞지 않고, 방사능 낙진 등 직·간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양이나 파괴력을 고려하면 북한의 전략핵은 유사시에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려는 엄포용으로 쓰겠다는 의도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의 ‘2023년 국가정보판단서’도 북한의 핵전략을 미국에 대한 억제와 한·미 압박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적고 있다.
북한이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점도 전략핵 사용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 중 1~5차 때 폭발력이 15㏏ 이하인 전술핵무기급을 실험했다. 또 2016년부터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를 달성했다고 강조했고, 2021년 1월 8차 당 대회 결정에 따라 전술핵무기 개발과 배치, 운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엔 소형화한 전술핵탄두인 ‘화산-31’과 이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5종, 순항미사일 2종, 수중공격무인정 1종 등 8가지의 핵탄두 투발 수단을 개발해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여차하면 전술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술핵이 현실적 위협으로 등장한 만큼 한·미의 대응 방안도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
우선 지난해 미국 랜드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작성한 ‘한국에 대한 핵 보장 강화 방안’이란 공동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자는 내용이다. 북한은 유사시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막기 위해 전술핵 사용 전략을 공개한 바 있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기습 공격과 전술핵무기를 사용해 전쟁 초반에 승기를 잡고, 추가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며 미국의 개입을 막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므로 ‘핵에는 핵’이라는 막연한 선언적 전략이나 사용 가능성이 제한적인 전략핵이 아니라 확실하고 구체적인 핵우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이 전술핵을 개발하거나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재배치할 경우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의 명분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핵은 발등의 불이 됐다. 비핵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의 핵무기 사용 문턱을 높이고 확전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의 핵무기 재배치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북한의 전술핵 공격 시 미군의 잠수함 등에서 즉각 전술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형태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북한 핵 위협 현실 인식이 급선무
또한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의 총체적 실상을 올바로 분석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국방백서』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위협에 초점을 맞춘 반면 실체적 위협으로 떠오른 핵미사일과 관련해선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2020년 판 『국
방백서』에선 핵 보유 현황을 두고 “북한은 플루토늄 50㎏과 상당량의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펴낸 2022년 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플루토늄 70여㎏, 고농축 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2년 동안 늘어난 북한의 핵물질 보유량이 플루토늄 20㎏뿐만이 아닐 것이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 역시 핵과 화생무기, 미사일은 빠져 있고, 육·해·공군의 병력과 무기 등 재래식 군사력만 다루고 있다. 핵무기 한 방은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 없는 피해와 충격을 야기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방부는 북한의 위협을 실제보다 평가절하하고 있는 셈이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북한의 위협을 정확히 평가하지 않고서는 실제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전쟁 대비 전략 수립과 전력 확충을 충실히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발사 준비 단계~상승단계에서 대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무인무기체계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한국군은 북한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 정책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이를 탐지하고 식별해 선제 타격하는 방안을 실전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AI를 기반으로 한 무기체계의 최고 선진국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휴전선 북쪽에서 대응하기 위한 AI 기반의 무기체계를 한·미가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 분야에 국방비를 대폭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선 미국의 전술핵을 억제력으로 활용하고, 군비경쟁에서 압도적인 질적 우위를 추구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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