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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흔들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한국이 대처하는 법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4-09-30 14:27    17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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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국제질서를 이끌던 탈냉전시대는 끝났다. 이는 곧 혼돈의 포스트 탈냉전시대의 시작이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서 보여주듯 세계는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전략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탈냉전시대를 관통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다양한 원심력과 구심력의 작용으로 인해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무너지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국제질서 변화의 근간은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누려왔던 ‘우위(primacy)’를 점점 잃고 있다. 반면 연평균 10%대의 고속 성장세를 보인 중국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중국은 2000년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6위에 불과했지만 2010년 2위 일본을 추월하더니 최근엔 미국의 70% 수준까지 다가섰다. 중국의 군사력은 지리적 이점을 고려하면 서태평양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혜택으로 급성장했지만 공교롭게도 중국이 글로벌 발전·안보·문명 이니셔티브를 추구하며 대안질서를 모색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또한 옛 소련의 영예를 회복하려는 전략을 추구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기존 질서에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이란·북한·쿠바·베네수엘라 등 교란의 축(Axis of Disruption)으로 지목되고 있는 국가들이 중국·러시아와 연대를 강화하면서 혼돈을 가중하고 있다. 한편 남반구의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도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발언권을 키우며 미국 중심의 연대 즉 글로벌 웨스트와 반대 진영의 글로벌 이스트 사이에서 이익 찾기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에도 유엔의 대북 제재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가중되는 위협 요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해온 미국이 국내 정치 환경에 따른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면서 구심력 역시 약화하고 있다. 2010년대 초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 중동 등 3개 전역에서 2개 전쟁을 동시에 치르는 전략을 포기했다. 대신 1개 전쟁은 관여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전쟁은 억지하는 방안을 택했다. 국력의 소비를 막기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인데, 이마저도 최근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역에서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며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미국과 함께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의 다른 두 축인 유럽과 일본도 경제 부진과 사회·정치 분열로 예전 같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뒤 서방의 결속력은 다소 강해졌지만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다시 집권할 경우 동맹체제에 간극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지정학적 위기에 더해 거대변화(Mega Change)가 동시에 발생하며 국제질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은 더 자주, 더 세게 지구촌을 엄습할 수 있다. 기후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녹색 에너지 전환에 따른 에너지 지정학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 인공지능을 필두로 급속히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은 경제·안보·사회에 폭넓은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가 출산율 저하로 인구절벽을 겪고 있는 점도 장기적으로 국제질서에 충격을 줄 것이다. 국제적으로 경제·사회 여건에 큰 변화를 주는 전환이 동시에 벌어지는 복합대전환은 이런 혼돈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높아진 한국 위상만큼 적극적 역할을
한·미동맹과 더불어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가능케 한 기축 요소였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 체제를 강화하고 교란을 막는 일을 외교의 핵심과제로 삼아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우리 국가 정체성과 헌법 가치에 부합하고 분단국, 지정학적 약점, 무역 국가, 에너지·식량·자원의 높은 대외의존도 등 어려운 대외환경을 헤쳐 나가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와 인도·태평양전략은 같은 바탕인 만큼 윤석열 정부의 인태전략에 살을 붙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올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하는 민주주의의 신장과 인권 증진 및 법의 지배 확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이제 중견국가로 자리 잡은 한국이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역할과 기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수다. 한국의 산업화·민주화·정보화 경험은 소중한 국제 공공재인 만큼 이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공유하는 게 방안이 될 수 있다.

안보와 관련해선 서방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고 위협을 억지하는 노력에 우리가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공세적 외교안보 정책, 러시아의 현상파괴 시도에 대해 우리의 능력에 걸맞는 역할과 기여가 필요하다. 동북아 안정을 위한 협력은 물론, 유라시아지역의 불안정과 교란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연계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유엔군사령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인·태지역의 ‘격자형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유럽·일본·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 중견국가들과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다자주의와 국제협조주의를 추구한다면 네트워크의 승수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며 진영외교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세계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유·공정무역 분야에서 규범을 강화하는 작업은 필수다. 한국은 세계 5대 제조업국가로 우뚝 섰다. 신흥·전략 기술 분야에서 서방의 위험회피(de-risking) 노력에 참여하면서도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보호무역, 산업정책 등 자유무역에 거스르는 시도에 맞서는 지혜가 요구된다.

우리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과 한국이 처한 외교 환경의 현실에는 격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국력 신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대외 환경을 직시하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래야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닦을 수 있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전 주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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