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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누구인가? <Ⅱ>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4-10-04 11:10    15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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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역사는 종종 뒤집힌다. 그것도 너무 자주, 너무 완전히 뒤집힌다. 현실 정치와 이념과 진영대결에 항상 활용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어제의 정치이고, 정치는 오늘의 역사라는 말이 고래로 역설적 명언인 이유는, 역사와 정치를 항상 연결하되 항상 뒤집는 - 본래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기에 - 이런 현실 때문이리라.

일제의 한국 병합과 통치와 강점은 원천적으로 불법·무효라는 이승만 필생의 신념과 강경한 대일(對日) 투쟁 및 대미(對美)·대(對)국제사회 압박의 근거와 논리, 박정희의 한일협정 체결 근본 원칙과 국제법적 입장은 오늘날 그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두 진영과 두 논리에 의해 정반대로 거부되거나 수용된다. 과거 역사와 현재 진영의 전도된 이 조우는 당연히 심각한 왜곡을 포함한다. 일제 강점기를 둘러싼 오늘의 논란을 보며 가장 놀랄 사람은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일지 모른다. 


한쪽 논리에 따르면 일제의 한국 병합·통치·강점은 합법과 불법, 타당과 부당의 문제를 넘어 실제 사실이었다. 아니 객관적 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합법과 불법, 유효와 무효보다는 실제 현실과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사실성이 타당성을 앞서며, 따라서 무릇 현실과 사실 우위의 원칙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과 사실 우위의 논리는 다른 상대와 현실에 대해서는 곧바로 뒤집힌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두 국가론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을 말한다. 두 국가론에 대한 서로 반대되는 주장들 모두 법적 논리와 사실적 현실에서 너무 멀다. 대한민국 헌법의 영토조항(제3조)과 국군의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 조항(제5조 2항) 사이의 모순만을 일단 지적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영토에 관한 규범과 사실, 당위성과 실행성 사이의 충돌이 존재한다고 해서 대한민국 영토를 수호해야 하는 국군의 의무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논란을 벌여야 하는가? 불필요한 동시에 불합리한 것이다.

2024년 7월 1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1967년 이후 지속된 이스라엘의 57년에 걸친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불법이자 국제법 위반행위라고 판정했다. 동시에 정착촌 활동의 중단과 불법 점령의 조속한 중단, 토지와 재산의 반환, 점령 기간 발생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명령했다. 이는 21세기 최악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한 원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이성과 국제법적 판정을 반영한다. 애초부터 57년 동안, 그리고 오늘의 현실은 부정된다.

미국 의회는 하와이 왕국 전복과 병합 100주년을 맞아 1993년 11월 23일 왕국전복, 주권 침해와 주권 불양도(不讓渡), 조약과 국제법 위반을 인정하는 이른바 ‘사죄결의안’(Public Law 103-150)을 상하 양원 합동으로 채택하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일 이에 서명하였다.

1990년 3월 15일 체코 프라하 방문 당시의 연설에서 독일의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대통령은 51년 전(1939년 3월 15일) 독일의 체코 침공과 점령 행위에 대해 침략, 협박과 무력에 의한 강요, 6년간의 억압과 점령, 정의와 도덕의 패배, 심각한 불의라고 규정하였다. 나아가 독일의 침공을 무력행사, 파렴치, 파괴적인 전쟁의 소용돌이, 엄청난 고통, 잔인함과 인류애 경멸로 고발한다.

선택된 하나하나의 현재의 정치 언어가 과거 역사에 대한 법률적·사실적 현실을 모두 담는다. 필자는 독일의 인류 죄악에 대한 그의 생전의 통절한 언어와 눈빛을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베를린을 방문할 때 그의 묘지를 자주 참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편성에서 한국은 2024년 국제사법재판소, 1993년 미국 의회, 1990년 폰 바이체커 대통령의 사례보다 훨씬 앞선다. 1965년 한국 정부는 “1876년의 구한국과 일본의 수호조약 이래 합방에 이르는 모든 조약이나 협정이 당초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던 무효”라고 주장하였다(『한일회담 합의사항』, 『한일회담 백서』, 『한일협정 문제점 해설』). 특히 1905년의 보호조약과 1910년의 강제병합은 강박조약으로서 완전 국제법적 강행규범(jus cogens) 위반이었다. 즉 당초부터 원천 무효였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법적으로 사실적으로 일제는 한국인들을 동등한 일본 국민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당시 ‘법률’과 ‘현실’ 모두를 전혀 반영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서류상의 ‘표기’ 문제 하나로 법 현실과 실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제 당시 현실로 들어가 보자. 1910년, 1919년, 1943년, 1945년, 그리고 이승만 시기와 1965년에 법적 사실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가? 주권·시민권·국가·국민이 종족·민족·혈통·언어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더 중요한 인류역사와 인간현실에 비추어 오늘의 논란은 법과 사실에 동시에 기반한 해석에 의해 해소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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