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 서울대 교수] 인공지능 시대, 학령은 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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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이상하게 엇갈리는 두 장의 교육 성적표가 있다. 열다섯 살 학생들의 역량을 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은 최상위권 성취를 보여왔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학교를 세우고 교사를 길러 모든 아이를 공부시킨 한국의 교육은 국가발전의 든든한 토대였고, 세계가 부러워한 성과였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성적표가 달라진다. 성인의 역량을 재는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한국 성인의 문해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모두 OECD 평균에 못 미치고, 연령대별 역량 격차도 OECD 평균보다 크다. 학교를 떠난 뒤의 배움도 드물다. 한 해 동안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공식적 교육과정에 참여한 성인이 OECD 평균으로 열 명 중 네 명 가량이지만, 한국은 열 명 중 한 명 남짓이다. 이 조사들은 같은 사람을 추적한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맞대어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학교교육의 성취가 성인의 배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산업시대에는 인생의 앞부분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그때 익힌 지식과 기술을 밑천 삼아 수십 년 일하고 은퇴하는 것이 전형적인 삶이었다. 먼저 배우고 그다음 일하는 시간표였으니 국가는 생애 초기에 학교와 교사에 아낌없이 재정을 쏟았다. 아이들의 교육을 부모의 형편에만 맡겨둘 수 없었던 것은 한 사람의 역량이 개인의 삶의 질과 나라의 경쟁력을 함께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기술변화 속에서 이 상식적이던 시간표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건강수명은 길어지는데 지식과 숙련의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 기술의 최전선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사람들은 학교에서 쌓은 역량 위에 더 높은 전문성을 더해야 하고, 때로는 그 기반 자체를 다시 배워야 한다. 한 번 배워 평생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여러 번 배움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필자는 기술혁신의 이론을 연구한다. 요즘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주제는 인공지능이 미래 일자리에 미칠 영향이다.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길지, 인간과 인공지능이 일을 어떻게 나누게 될지, ‘먼저 배우고 그다음 일한다’는 익숙한 생애의 순서가 어디까지 바뀔지는 아직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연구자마다 주장도 엇갈린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기술을 거듭 배우고 흡수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은 변화에서 밀려나고, 국민이 그런 기회를 갖도록 뒷받침하지 못하는 나라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가르는 것은 기술의 격차 못지 않게 학습의 격차일 것이다.
한국은 생애 초기에 튼튼한 교육의 기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성취가 학교를 떠나는 순간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학교에서 쌓은 기초는 대학에서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으로 이어지고, 그 후에도 기술과 산업이 바뀔 때마다 거듭 갱신되어야 한다. 교육도 이제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놓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평생학습은 서로 경쟁하고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다. 앞 단계에서 쌓은 것이 다음 단계의 출발점이 되고, 그렇게 이어지는 축적의 시간이 한 사람의 역량을 만든다.
산업시대의 교(敎)와 육(育)은 인공지능 시대에 평생 이어지는 학(學)과 습(習)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성인학습도 노동이나 복지 등 다른 정책의 하위수단이 아니라 교육의 본령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가정의 경제력에 맡겨두지 않았던 것처럼, 학교를 마친 뒤에도 형편 때문에 배움이 끊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기회의 사다리를 촘촘하게 놓아야 한다. 배움이 평생의 일이 되었다면 그것을 떠받치는 사회적 기반도 평생 이어져야 한다. 유네스코(UNESCO)가 ‘교육받을 권리는 모든 연령을 포괄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움의 권리에는 졸업이 없어야 한다.
달라진 삶의 시간표는 교육재정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학교교육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지키면서, 서로 다른 교육 단계의 필요를 어떻게 함께 뒷받침할 것인가는 교육재정과 행정을 깊이 아는 전문가들이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다. 다만 기술혁신의 관점에서 반드시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교육은 이제 생애 앞부분에 한 번 치르는 투자가 아니라 평생에 걸친 축적이다. 교육재정도 모든 단계의 배움이 이어지는 긴 시간을 시야에 두어야 한다.
한국은 산업시대가 요구한 교육체제를 놀라울 만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나라다. 이제 다음 단계로 진화할 차례다. 아이들이 잘 배우는 나라에서, 누구나 평생 배울 수 있는 나라로. 학령(學齡)은 본래 학교에 갈 나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앞으로 한 사람에게 학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술이 바뀌고 일이 달라질 때마다 다시 찾아온다. 인공지능 시대의 학령은 평생이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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