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서울대 교수] 대체 못할 제조 역량 키워 페이스메이커로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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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인공지능(AI)을 첫 공식 의제로 채택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AI 개발’의 속도를 ‘AI 안전’의 확보에 맞추자는 ‘AI 속도조절론’이 거론되는 와중에 개최된 회담이라 양국 간에 어떤 합의가 도출될지에 기대가 모아졌다. 게다가 최근 AI 반도체나 AI 모델의 수출입 제재를 놓고 불거진 갈등의 불씨가 어떻게 조율될지도 관건이었다. 민감한 현안의 해결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휴전’하는 모양새를 띄며 회담은 끝났다. 그나마 성과라면 AI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AI 사고 대응의 ‘핫라인’ 구성을 거론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중은 AI 개발을 감속해서 본격적으로 AI 안전을 챙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강대국 경쟁 논리에 갇힌 안전
무엇보다도 미·중이 AI 개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은 AI 개발의 감속보다 중국에 대한 자국의 기술 우위를 우선시한다. 중국은 획일적 AI 감속론이 자국의 추격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패권적 각본이라고 의심한다. AI 안전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르다. 미국은 자국의 AI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고 AI 안전을 챙긴다는 현행 기조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중국은 인간의 통제와 오·남용 방지를 강조하지만, 미국 주도가 아닌 자국과 개도국이 참여하는 AI 분야의 다자 규범을 옹호한다. 이렇듯 미·중이 강대국 경쟁의 논리에 갇혀 서로 견제하길 지속하는 한, 당장 AI 속도조절론이 힘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최근 AI의 급속한 발전을 보면, AI에 대한 인간의 통제를 강조하는 AI 속도조절론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개월 동안 열흘이 멀다 하고 최첨단 에이전트 AI 모델들이 공개되면서 마치 브레이크가 풀린 자동차의 질주를 보듯 위태롭다. 더 위험한 것은 이들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AI 속도조절론을 각자의 편의에 따라 과잉 안보화로 치부하며,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연상케 하는 무한경쟁을 벌이는 양상은 쉽게 누그러들 것 같지 않다. AI의 핵무기급 위험에 대한 AI 안보불감증을 경고하는 세계적인 AI 석학들과 주요 AI 기업 CEO들의 지적을 흘려듣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급망 입지 구축
AI 속도조절론을 다루는 한국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중견국이 보기에 AI 속도조절론은 사다리 걷어차기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선도자의 감속과 추격자의 감속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선도자가 감속한 틈을 타서 추격자는 오히려 가속해서 추월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인류의 안전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AI 위험에 대한 책임은 너무도 엄중해서 누구도 면제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세계 3등’ 수준까지 따라왔는데 인제 와서 추격자가 먼저 감속하라는 말은 썩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AI 속도 조절의 과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미·중간 구조적 위치설정 과제
첫째, 추격의 속도를 늦추진 않더라도 적어도 기존의 AI 전략을 다시 성찰해 보는 방향 조절은 필요하다. 우선 AI 모델 하나의 개발이 아니라 AI 풀스택 전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AI 모델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산업 전반에 적용해서 실제 성과를 창출하는 노력도 요구된다. 더 나아가 한국의 AI 기반 제조 역량을 글로벌 공급망의 ‘대체 불가능한 입지’에 자리매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렇게 보면 향후 AI 전략의 과제는 글로벌 수준의 소버린 AI 개발을 목표로 한 가속 일변도가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기존의 전략 기조를 격상하는 변속의 발상을 갖추는 데 있다.
둘째, AI 속도 조절의 과제는 미·중 양국과의 거리 조절의 문제를 포함한다. 최근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미토스·페이블 AI 서비스를 획일적으로 셧다운 했던 사건은 한국에도 큰 쇼크였다.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면 적어도 안보·국방 분야에서는 자체 개발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다. 그 개발 과정에서 중국발 오픈 모델의 활용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아 도입 속도를 조절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게다가 중국과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미국의 외교적 압박도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미·중 사이에서 변속 기어의 자리를 정확하게 찾는 구조적 위치설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인류 미래 고민하는 중견국 리더십
끝으로, AI 안전 문제를 챙겨야 할 역할 조절의 책임도 인식해야 한다. 미·중 두 강대국이 끝내 인류를 위한 AI 안전 운행의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중견국인 한국이라도 나서야 할지 모른다. 물론 미·중에 요구되는 강대국 책임과 한국이 담당할 중견국 역할은 그 성격이 다르다. 강대국들의 책임을 건설적으로 짚어내는 동시에,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도 설득하는 중견국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사실 여태까지 한국은 AI의 안전 및 군사적 활용 등의 분야에서 중견국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앞으로도 AI 속도조절과 관련된 중견국 외교의 행보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다.
최근 한반도 평화 구축의 맥락에서 한국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이 많이 거론된다. 강대국 미국의 피스메이커(peace maker) 역할을 보완하는 중견국 문제의식의 발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AI 분야에서도 강대국들의 AI 속도조절론을 보완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인류에게 치명적인 AI를 통제할 일차적 책임은 강대국에 있지만, 중견국도 AI 속도 조절을 위해서 필요한 역할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간의 AI 전략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미·중 사이에서 대체 불가능한 입지를 확보하는 한편, AI와 인류의 미래도 함께 고민하는 페이스메이커로서 한국의 복합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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