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한·중 정부 간 외교적 약속과 민간 자율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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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에서 병목 중 하나인 ‘하나의 중국’ 문제가 최근 국내에서 다시 불거졌다. 민간이 주도한 제16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만관(Taiwan Pavilion)’ 명칭 문제가 중국 측의 항의라는 외교 사안으로 비화하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외교 명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지 근본적 질문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도 대만 문제의 민감성을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갈수록 격화하는 양안 갈등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대만 문제 자체가 미·중 정상회담은 물론 국제사회의 민감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공개적 위반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핵심 이익’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한국 정부가 민간 재단의 운영과 행사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음에도 문화 행사가 외교적 긴장으로 증폭된 이유다. 특히 중국의 외교적 압박이 외교 리스크를 감당할 역량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 재단 등 일반 기관으로까지 전방위로 확장되는 추세여서 더 우려된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 유일의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관철하려 한다. 전자는 미국·일본·한국 등 지금껏 중국과 수교한 대부분의 국가가 승인(recognize)했지만, 대만 귀속에 대해서는 ‘유의한다(take note)’라거나 ‘인지한다(acknowledge)’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했고, 일본은 ‘충분한 이해(fully understand)’라고 사용해 법적 동의는 별개임을 표시했다. 한국도 1992년 한·중 수교 성명에서 대만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겠다는 외교적 수사에 더 가까운 ‘존중한다(respect)’로 표현했다.
사실 중국이 처음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금처럼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1993년 ‘대만 문제와 중국의 통일’, 2000년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문제’ 백서를 통해 원칙을 공식화했고, 명문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과거 수교문서도 소급해 재해석하면서 모든 수교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일부 개도국과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의 국가통일 실현 노력을 지지한다’는 문구로 요구 수준을 더 높여가는 추세다.
문제는 완고해진 중국의 태도가 한국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현실이다.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외교적 약속을 지키면서 정부가 경제나 문화 등 실질 협력에는 개입하지 않는 유연한 입장과 기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모든 상황을 하나의 중국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재단하고, 정치·외교적 약속을 경제·사회·문화 영역까지 확대해 적용하려 한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반복해서 외교 쟁점이 되는 것도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주도하는 문화 활동은 중앙정부의 통제 영역이 아니다. 정치체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불필요한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더욱이 문화 교류 영역의 명칭이나 행사에 외교적 보복을 느낄 만한 압박이 가해지면 상대국은 이를 과도하게 느낄 수밖에 없으며 국민 정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외교적으로 경직된 태도 때문에 민간 교류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민간 교류의 지속이 공식 외교 관계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양보는 사소해 보이지만 사례가 누적돼 관행이 되면 수습이 쉽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외교 관계의 약속은 준수해야 하지만, 적용 범위가 민간·지방의 비정치적 교류로 확장되지 않도록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경제·민간 문화 교류에 있어 명칭 표기와 호칭은 국제 관행으로 정리하고, 문화·예술 영역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는 원칙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원칙과 기준 없는 대응은 압박으로 반복되고, 양보는 누적돼 관행이 된다. 한국이 하나의 중국 해석에 빈틈을 보이면 중국은 물론 대만도 집요하게 파고들게 되고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정부 당국과 민간 모두 분명한 경각심을 갖고 상호 협력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원칙과 기준으로 재정립해야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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