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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용 전 주일 대사] 신냉전의 뜻과 한·일 관계의 무게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3-05-15 11:14    2,05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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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사에서 냉전 시대 이승만 대통령의 대미 외교와, 탈냉전 시대 김대중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시대정신에 맞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냉전 상황에 직면한 윤석열 정부는 대미·대일 외교를 한 묶음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미·소 냉전 때는 한국이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에 편입됨으로써 미국과 함께 냉전 승리를 공유했다. 신냉전은 미·소 냉전의 복사판이 아니어서 외교 사안에 따른 판단과 선택이 대단히 어렵다.

미·소 냉전은 그 범위가 세계적이었고, 그 내용의 핵심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의 조직적 양극화였다. 그때는 양자택일, 선악 이분법의 선택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의 절대화 시기였다. 미·소 냉전의 중심축인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도미노 붕괴로 탈냉전 상황이 도래했다. 


지금 우리는 냉전→탈냉전→신냉전의 역사 과정에 살고 있다. 미·소 냉전의 뿌리였던 소련 사회주의 혁명은 70년 만에 망했지만, 중국 사회주의 체제는 70년이 지났고 지금도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미·중 신냉전은 체제 이념은 다르지만, 시장경제의 보편성을 공유하는 만큼 미·소 냉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다. 신냉전을 21세기 제한적 냉전 상황으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게 우리 국가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윤 정부는 신냉전 상황에서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틀을 유지하면서 핵·미사일 도발을 강화하는 북한과도 평화공존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딜레마를 감당해야 한다. 또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성사시켜 경제 교류를 중심으로 한 상호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특히 윤 정부는 정례화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의장국에 걸맞은 의제를 설정하고 중·일을 유도할 수 있는 외교 공간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

윤 정부의 대일 외교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국익을 챙기는 과업을 지속해서 실천해야 한다. 한·일은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한다고 약속했다. 이 선언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에 대하여 양국 정상이 최초로 합의한 협정이다. 당시 일본 오부치 총리는 협정 조인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국회 연설에서, 두 나라 국민을 향해 반성과 사죄를 육성으로 확인하고 상호 인정을 통한 화해 협력을 호소했다. 한·일은 심각한 갈등 속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안별로 대처하면서 한류 열풍, 공동 학술연구, 월드컵 공동 개최 등 화해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 외교가 상대해야 하는 일본의 주류는 천황제 국가 전통을 이어온 보수 세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55년 이후 약 70년간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본 보수 정치는 미국이 주도한 평화헌법 체제에서 성장해왔으나 그 뿌리는 메이지유신의 천황제 국가 보수주의이다.

두 차례의 셔틀 정상회담으로 이제 한·일 외교 정상화의 문이 열렸다. 한·일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점령과 동맹이라는 유사한 경험을 했고, 한·미·일은 미소 냉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이념을 공유하고 동북아 국제 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해 왔다.

한·일은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의 7대 선진국에 속한다. 인권 분야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비핵평화 노선을 유지하면서 7대 군사 대국에도 속한다. 이 정도의 세계적 위상으로 한·일 협력과 신뢰가 견실해지면 신냉전 상황에서도 미·중의 자국 우선주의 일탈을 견제하고, 유럽연합(EU)을 이끄는 독일·프랑스 협력과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내정·외교에서 엄청난 도전들이 있지만 국민 통합의 정치력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일 외교 추진 과정에서 국민 통합을 망치는 국론 양극화를 막아야 한다. 대안이 있는 건설적 비판은 담대히 받아들이고 근거 있는 비판은 외교 협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 불만이나 야당 반대에 대해선 미래 지향적 목표와 구체적 수단·방법을 제시하고 진정성 있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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