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 청년이 보수에게 북한을 묻다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1-03-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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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대상으로 특강 할 때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하나.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대북 접근이 바람직할까.” 진보 진영은 일관되게 답할 것이다. 같은 민족이니 당연히 통일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당장 어떤 경협이라도 시작해야 한다며 말이다. 반면 보수의 북한관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일부는 여전히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고 믿고 이를 급진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엔 절대 통일해선 안 된다는 통일불가론이 보수 유권자 사이에 퍼지고 있다. 심지어 필자의 이름과 직함을 도용한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점성술이 학문을 대체할 수 없듯 북한 붕괴론이 보수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현재의 북한 체제는 지속 불가지만 그 붕괴 시점은 예측 불가다. 독재자가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책을 펼뿐더러, 정치적으로 강력한 반대 세력이 존재하며, 비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우연히 겹칠 때 체제는 붕괴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통제나 인지 범위를 벗어난다. 이 모든 요인을 정렬시켜 한꺼번에 폭발시킬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는 없다. 필자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말한다. “체제 붕괴 시점을 예측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100이라면 그동안 연구해서 아는 것을 모두 합쳐도 10이 되지 않는다.”
소련 붕괴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991년은 서방의 소련 연구자에게 충격의 해였다. 평생 연구하던 대상이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다며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석학들은 1983년에 출간된 『소련 경제, 2000년을 향하여』란 책에서 소련이 연 3%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그럭저럭 굴러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된 지 8년 만에 소련이 무너졌다. 그 충격으로 어떤 교수는 다른 경제학 분야로 전공을 바꿨고 어떤 이는 아예 연구를 접었다. 미국 CIA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예산을 써가며 소련 경제를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붕괴 예측에 실패했다며 맹비난을 받았다.
이기적 보수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필자를 빙자하여 ‘한반도 통일이 그렇게도 지상명제인가’ 등의 제목으로 SNS에 대량 유포되는 가짜뉴스는 통일하면 우리 월급 절반이 날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높은 비용은 독일처럼 급진통일을 할 때 발생할 뿐, 경제통합 단계를 상당 기간 거쳐 이루어지는 점진통일에는 생기지 않는다. 자기중심적 보수는 이를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진보 정부가 지향하는 통일 방안은 급진이 아니라 점진인 것도 모른다. 현 정부를 겨냥하려던 통일불가론이 오히려 급진통일을 주창하는 다른 보수를 공격하는 셈이다. 보수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다. 이렇게 지식이 부족하고 열정마저 없는 보수가 청년의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가장 약자인 북한 주민을 우리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나.
새로운 철학을 가진 보수가 나와야 한다. 진보와 대척점에 서는 것만으로써는 참된 보수가 될 수 없다. 그동안 보수는 진보의 틀에 갇혀 북한과 통일을 안티테제로만 이해했다. 햇볕정책에 맞서 북한붕괴론을 내세우고, ‘북한 바라기’에 대응한다며 통일 불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수세적, 퇴행적 접근법으로는 지지세력을 확장할 수도,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 갈 수도 없다.
진보가 민족의 통일을 주장한다면 보수는 가치의 통일을 강조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핵심적인 가치다. 이 가치를 외면한 민족 통일은 재앙이다. 따라서 남북이 각기 다른 제도를 가진 채 연방을 구성하자는 통일 방안은 보수의 가치에 어긋난다. 현실성도 없다. 오히려 시장을 기반으로 경제통합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가 제도화되도록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북한 내 발전소 건설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조건을 충족할 뿐 아니라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추동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정권이 전력을 국영기업에만 공급함으로써 사회주의 경제를 복구하려 할 수 있다. 시장경제 없인 북한은 후퇴할 뿐이고 우리의 지원도 헛수고로 끝난다.
진보가 북한 정권에 공을 들인다면 보수의 정책은 주민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 비핵화에 발맞추어 개성공단이 재개된다면 북한 정권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월급의 주인이 자기이며 자신의 세금으로 나라가 운영된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투명한 조세 제도가 북한에 도입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권에 돈이 들어가는 큰 경협보다 주민의 시장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작은 경협이 보수의 대북 접근법에 더욱 부합한다.
청년이 북한과 통일을 묻는다면 보수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보수가 거듭났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까. 지식이 열정을 인도하고 열정이 지식을 빛나게 해야 한다. 더는 몽상 진보와 사이비 보수에게 한반도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점성술이 학문을 대체할 수 없듯 북한 붕괴론이 보수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현재의 북한 체제는 지속 불가지만 그 붕괴 시점은 예측 불가다. 독재자가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책을 펼뿐더러, 정치적으로 강력한 반대 세력이 존재하며, 비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우연히 겹칠 때 체제는 붕괴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통제나 인지 범위를 벗어난다. 이 모든 요인을 정렬시켜 한꺼번에 폭발시킬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는 없다. 필자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말한다. “체제 붕괴 시점을 예측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100이라면 그동안 연구해서 아는 것을 모두 합쳐도 10이 되지 않는다.”
소련 붕괴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991년은 서방의 소련 연구자에게 충격의 해였다. 평생 연구하던 대상이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다며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석학들은 1983년에 출간된 『소련 경제, 2000년을 향하여』란 책에서 소련이 연 3%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그럭저럭 굴러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된 지 8년 만에 소련이 무너졌다. 그 충격으로 어떤 교수는 다른 경제학 분야로 전공을 바꿨고 어떤 이는 아예 연구를 접었다. 미국 CIA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예산을 써가며 소련 경제를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붕괴 예측에 실패했다며 맹비난을 받았다.
이기적 보수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필자를 빙자하여 ‘한반도 통일이 그렇게도 지상명제인가’ 등의 제목으로 SNS에 대량 유포되는 가짜뉴스는 통일하면 우리 월급 절반이 날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높은 비용은 독일처럼 급진통일을 할 때 발생할 뿐, 경제통합 단계를 상당 기간 거쳐 이루어지는 점진통일에는 생기지 않는다. 자기중심적 보수는 이를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진보 정부가 지향하는 통일 방안은 급진이 아니라 점진인 것도 모른다. 현 정부를 겨냥하려던 통일불가론이 오히려 급진통일을 주창하는 다른 보수를 공격하는 셈이다. 보수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다. 이렇게 지식이 부족하고 열정마저 없는 보수가 청년의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가장 약자인 북한 주민을 우리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나.
새로운 철학을 가진 보수가 나와야 한다. 진보와 대척점에 서는 것만으로써는 참된 보수가 될 수 없다. 그동안 보수는 진보의 틀에 갇혀 북한과 통일을 안티테제로만 이해했다. 햇볕정책에 맞서 북한붕괴론을 내세우고, ‘북한 바라기’에 대응한다며 통일 불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수세적, 퇴행적 접근법으로는 지지세력을 확장할 수도,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 갈 수도 없다.
진보가 민족의 통일을 주장한다면 보수는 가치의 통일을 강조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핵심적인 가치다. 이 가치를 외면한 민족 통일은 재앙이다. 따라서 남북이 각기 다른 제도를 가진 채 연방을 구성하자는 통일 방안은 보수의 가치에 어긋난다. 현실성도 없다. 오히려 시장을 기반으로 경제통합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가 제도화되도록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북한 내 발전소 건설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조건을 충족할 뿐 아니라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추동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정권이 전력을 국영기업에만 공급함으로써 사회주의 경제를 복구하려 할 수 있다. 시장경제 없인 북한은 후퇴할 뿐이고 우리의 지원도 헛수고로 끝난다.
진보가 북한 정권에 공을 들인다면 보수의 정책은 주민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 비핵화에 발맞추어 개성공단이 재개된다면 북한 정권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월급의 주인이 자기이며 자신의 세금으로 나라가 운영된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투명한 조세 제도가 북한에 도입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권에 돈이 들어가는 큰 경협보다 주민의 시장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작은 경협이 보수의 대북 접근법에 더욱 부합한다.
청년이 북한과 통일을 묻는다면 보수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보수가 거듭났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까. 지식이 열정을 인도하고 열정이 지식을 빛나게 해야 한다. 더는 몽상 진보와 사이비 보수에게 한반도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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