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바이든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규제 철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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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는 1962년 국가안보의 위협이 발생할 경우 수입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제정했다.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전 세계로부터 수입하는 철강제품에 대해 25% 추가관세 부과를 결정했다(수입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10% 추가관세를 부과했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관심이 큰 철강수입규제에 대해 살펴본다). 한국과는 관세부과 대신 미국으로의 철강수출물량을 30% 축소하는 약속에 합의했다. 이러한 철강수입규제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통상전문가들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철강수입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국가안보 예외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도 자국으로부터의 철강수입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또한 당시 미국은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이미 40~50%의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상태여서 추가적인 수입규제가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나아가 한국의 철강수출물량 축소는 사실상 WTO가 금지하고 있는 ‘수출자율제한(VER)’에 해당한다. 이처럼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철강수입규제에 대해서는 이행 시작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위협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 철강수입규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결과를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철강기업들이 많이 위치한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등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belt)’ 지역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철강산업보호를 약속했다. 이후 이들 지역의 투표결과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정치적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철강수입규제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2년 부시 대통령 시절에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measures)를 발동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당시 유일한 대안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게리 허프바우어 박사팀의 연구에 의하면 2018년 3월 추가관세가 부과되면서 미국내 철강가격이 9% 가량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철강기업의 수익이 24억 달러 증가했고 대략 8700명의 철강관련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미국 내 철강을 사용하는 다른 산업들은 철강가격 상승으로 국내수요 감소는 물론 국제경쟁력 약화로 수출수요도 감소해 56억 달러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했다. 나아가 이들 기업은 철강산업의 신규 일자리 수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고용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했다. 거기다가 일부 무역상대국들의 보복조치로 철강과 관계가 없는 미국 내 다른 산업들도 피해를 보았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동 연구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수입규제가 미국경제 전체에 순손실을 가져다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특정제품의 수입이 늘면 국내 동종산업이 피해를 본다. 특히 동종산업의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어 수입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게 된다. 또한 이들은 결집력이 강해 집단행동에 나서고 나아가 수입을 막아달라는 정치적 로비도 하게 된다. 한편 특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는 동 제품을 원부자재로 사용하는 국내기업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나 동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여러 산업에 분산되어 있어 노동자들이 쉽게 집단행동을 할 수 없으며 정치적 힘도 약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보호무역조치를 원하는 집단과 이를 반대하는 집단의 정치적 역량은 구조적으로 매우 비대칭적이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경제효과와는 무관하게 늘 보호무역조치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겪는 철강산업 문제는 세계철강생산능력이 과도하게 확대된 데 근본원인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일방적 철강수입규제는 이러한 글로벌 문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철강교역을 왜곡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철강수출물량을 비자발적으로 축소해야 하는 한국의 철강기업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은 철강산업보호 대신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R&D), 교육, 훈련, 인프라 등을 위한 투자확대를 통해 자국 철강기업과 노동자들이 미래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은 정책이 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이 다자무역체제를 존중하고 동맹국들과 협력하여 다시 세계무역질서를 주도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적 실익도 없고, WTO규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세계교역질서를 왜곡시키는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규제를 조속히 철회하길 바란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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