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 북한 비핵화 판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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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에 필자는 북한 비핵화가 1~2년 내 시작될 가능성을 30%로 보았다. 무엇보다 중국이 대북제재를 엄격히 집행하고 있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제재하라며 중국을 거세게 압박했고 중국도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이에 응했다. 당시 북·중 관계도 최악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 2017년까지 북·중 정상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친중파로 알려진 장성택을 처형했을 뿐 아니라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를 위험하게 만드는 그를 시진핑 국가주석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 이런 이유로 2017년 하반기엔 ‘북한에 못 하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중국이 막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2018년 하반기, 비핵화의 조기 개시 가능성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두 가지 실책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먼저 한국 정부의 문제였다. 2017년 말의 강도 높은 제재를 1년 이상 지속해야 비핵화 문을 열 수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조급했다. 2018년 초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며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에 너무 빨리 불러냈다. 더욱이 지정학적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못한 채 판문점 회담을 엄청난 국내외 이벤트로 만들어 버렸다. 북한이 한국을 넘어 미국과 가까워질 것을 두려워한 중국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판문점 회담 전후로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이라는 큰 선물을 안겼다. 대차대조표상 중국이 부채에서 자산으로 바뀌자 북한은 협상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것이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근본 원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생각 없이 행동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 북한 비핵화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외교 현실을 무시했다. 비핵화는 문도 열지 못했는데 단지 북한 도발이 멈추었다는 이유로 바로 전선을 중국으로 옮겼다. 미국이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고 기술전쟁까지 벌이려 하자 중국은 북한 카드로 응수했다. 미국이 수백 번 넘게 중국의 UN 제재 위반 행위를 지적했지만 중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북한 비핵화가 미·중 갈등의 부분집합이 된 것이다. 필자가 중국의 저명 학자들에게 질문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미·중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중국은 대북제재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답했다.
그러나 2020년, 반전이 일어났다. 코로나 사태로 비핵화 가능성이 다시 30%를 넘어섰다. 방역을 위해 북한이 스스로 무역을 봉쇄하면서 원래 의도했던 제재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 충격을 경제에 미쳤다.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와야 한다며 호기를 부리던 김정은은 크게 낙심해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위중설, 사망설까지 나돌았다. 지도자가 자신감을 잃은 데다 경제위기로 주민 불만이 비등해지자 김여정이 나서 여론의 화살을 남한에 돌렸다. 그 정점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였다. 코로나가 몰고 온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심리적 안정을 다소 회복한 듯 김정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열 정비에 들어갔다. 특히 올해 1월에 열린 8차 당 대회에서 그는 자력으로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대내외에 보이려 했다. 또 미국의 적대 정책 철회 없인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 천명함으로써 북한의 협상력이 우위인 양 과시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허세는 통하지 않는다. 필자는 스탈린식 자력갱생을 ‘미션 임파서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돼지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격’이라 비유했다. 당 대회와 그 뒤의 많은 회의는 김정은이 직접 나서 다잡아야 할 만큼 북한 내부 균열이 심각함을 암시한다. 오히려 사상 투쟁과 반(反)부패 드라이브를 통해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번지지 못하게 막으려는 그의 절박함만 돋보였다.
코로나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주 북한은 1년 만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접근법도 조만간 공개된다. 앞으로 북·미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미사일, 도발, 제재와 압박, 갈등과 충돌이라는 단어가 훨씬 자주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수년 내에 비핵화가 성공할지 아니면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이 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혹은 독재자의 무지와 오만이 큰 위기를 불러오던 역사의 패턴이 북한에 반복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접근법을 구체화한 비핵화 로드맵을 미국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의 전개와 북한 내부의 변화까지 고려하여 제재와 관여의 순차를 만들고, 비핵화 단계에 맞춘 정교한 방안과 세밀한 목록을 준비해야 한다. 반면 중국과 북한을 직접 움직이려는 시도는 부작용만 초래한다. 미·중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중국의 대북 정책을 한국이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김정은의 행동도 북한 내부와 미국을 겨냥할 뿐 한국의 태도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북·중을 의식할수록 바이든 정부의 신뢰를 잃게 되고 비핵화도 멀어진다. 지금 1년을 놓치면 한반도의 100년이 어두워질 수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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