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 김정은을 가둔 새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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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 마음대로 지저귈 수 있으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는 없다.’ 필자가 2019년 12월 중앙시평에 쓴 글이다. 그러나 이제 김정은을 가둔 새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는 다시 격랑 속에 빠져들 조짐이다.
그동안 새장을 닫아 둔 힘은 제재와 미·중 관계였다. 중국은 미국을 의식해 새는 먹이되 새장은 열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한편으론 미국에 대응하는 카드로 북한을 활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북한 도발로 한반도가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또 미국이 중국을 더 거세게 몰아붙이지 않도록 적당히 관리하려 했다. 북한이 코로나 방역으로 대외무역을 차단하기 전까지 중국은 관광객을 보내고 식량과 에너지를 원조함은 물론 유엔제재를 위반하는 북·중 간 상업 활동을 어느 정도 묵인했다. 감염병이 사라져도 중국의 역할은 절대적일 것이다. 북한은 경제 회복을 고대하겠지만 그 관건도 중국이 쥐고 있다. 김정은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발하면 중국은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중국의 의도를 알고 있는 김정은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김정은은 중국을 보고 중국은 미국을 보는 묘한 구도였다.
경제난이 최근 도발의 최대 원인
김정은, 핵만으론 권력 유지 못해
우리도 단층적인 정책 버려야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물고 물리는 지정학적 균형을 흔들어 놓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중 대립이 미·러 충돌로 전환되자 중국의 전략적 입지가 급상승했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352개 제품의 관세부과를 올해 말까지 철회해 준 것이 한 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집중하려는 미국은 북한이 도발하더라도 중국을 압박하기 어렵다. 북·중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때처럼 “화염과 분노”로 북한 도발에 대응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은 도발한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중국이 도발을 눈감아 줄 여유가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새 정부가 미국 일변도로 흐르지 않도록 이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변화가 도발의 상황적 요인이라면 북한의 경제난은 구조적 원인이다.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심각성은 야간조도와 경제성장률 간의 관계를 이용한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김규철 박사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는 2017∼19년에 걸쳐 북한 제조업 생산이 20% 감소했다고 추정한다. 또 김다울 박사는 제재 이전에 무역과 시장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의 조도가 제재 후 더 많이 감소했음을 밝혔다. 무역과 시장이 제재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의미다. 코로나 발발 이후인 2020년부터 경제충격이 더 컸을 개연성을 고려하면, 2017년부터 올해 말까지 북한경제 규모는 30% 정도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이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지금은 코로나 핑계로 근근이 버티겠지만 감염병이 잦아든 후에도 경제위기가 지속된다면 김정은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자가 될 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요인의 우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경제 회복은 어렵다는 판단을 북한 정권이 내릴 때라야 제대로 된 협상의 기회가 열린다. 이는 제재를 실행하고 있는 중국의 협력 없이는 힘들다. 가능하다면 2017년 말 수준의 고강도, 적어도 코로나 이전 수준의 제재를 유지하지 못하면 김정은은 새장을 벗어나 날아다닐 것이다. 동시에 상황적 요인의 불리함도 극복해야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 어떻게 종결될지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만약 중·러 밀착을 막기 위해 미국이 더 많은 당근을 중국에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김정은을 가둔 새장은 더 크게 열릴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미국의 대중 전략은 무엇인가. 경쟁과 협력, 압박과 설득의 영역을 어떻게 설정하고 이를 어떻게 사안별로 순차화(順次化)할 것인가.
단층 단순한 사고로써는 지정학적 복합성 시대에 생존할 수 없다. 비핵화의 첫발도 떼기 전에 ‘평화의 봄’을 노래하던 민족적 감상주의자, 김정은은 핵을 내려놓고 경제를 택했다던 순진한 독심술사(讀心術士)는 정책에서 손을 떼야 한다.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현실주의자도 마찬가지다. 독재자의 권력을 무너뜨린 요인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다. 절대 독재자의 금기어는 ‘절대’라는 말이 있다. 권력 유지를 제외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필요에 따라서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핵화를 국제관계의 틀 속에만 가두어 해석하면 정책의 공간을 찾을 수 없다.
무엇보다 단순한 사고의 최대 포로는 김정은이다. 핵 만으로썬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아랍의 봄의 시발점이 되었던 튀니지에서도 시위의 도화선은 경제 문제였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인도 소련 해체 후 핵을 폐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 실패와 부패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핵에 집착할수록 경제가 어려워져 오히려 그의 권력 유지에 해가 된다. 어찌 보면 김정은 스스로 새장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새장 속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아는 그의 협소한 시야가 북한을 망치고 있다. 잘 보지 못한 채 날려는 새는 추락한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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