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한반도평화워치] 위기의 한·일, 보수가 진보 포용하며 국익 넓혀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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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진 한·일 관계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4월 24일 한일정책협의단 정진석 단장이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친서를 지니고 방일했다. 양국 현안을 신속히 해결하자는 기시다 총리의 화답이 지난 10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하야시 외상을 통해 전달됐다. 다음 날엔 축하 사절로 방한한 일·한의원연맹 임원단이 김진표 회장 등 한일의원연맹 임원단과 합동 간담회를 열어 양국 의회 차원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동향은 언론을 통해 자세히 전해졌다. 양국 정치인들의 말의 핵심은 한결같다. 자국의 이익이다. 나아가 그들은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해 관계 개선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의 말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논문이나 칼럼을 통해 발표되는 정책 담론이다. 거기에는 한결같은 패턴이 있다. 한·일 관계를 파국 직전까지 몰고 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국익론에 근거한 관계 개선을 주문한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익론에 근거한 한·일 관계 개선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했다. 어느덧 국제정치 질서가 신냉전 시대로 돌입했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이 우세를 점하면서 냉혹한 정글 속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국익 기반의 외교와 안보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 마음에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국익론에 이끌려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바퀴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우려와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일 관계의 접근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익론으로 치유론자 설득 쉽지 않아
한·일 관계를 보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정치·경제 접근법으로 외교와 안보, 경제를 중심으로 한·일 관계를 본다. 다른 하나는 인문·사회 접근법으로 역사 문제와 가치 규범을 포함해 시민 사회와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국익론은 전자를 대표하는 이론이자 신념이다. 이에 반해 후자에 해당하는 것 중의 하나로 치유론을 들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1965년 청구권협정에 따른 한·일 국교정상화가 국익론의 원형이라면, 1998년에 공표된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은 치유론의 전형이다. 이후 보수·진보 정권 교체가 진행되면서 국익론과 치유론은 선명히 대립하게 된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압박적 중재에 따라 국익론에 근거하여 성사됐다. 그러나 이 합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치유론자들의 반발과 일본 우익세력의 뜻을 반영한 아베 총리의 협량한 대응으로 합의에 따른 후속 조치를 추진할 동력을 잃게 되고, 마침내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치유론자들의 지지를 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로 청산되고 만다. 이어 2018년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이 나오자 치유론자의 주장에 포획된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와 극심한 대립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정치·경제·외교·안보 면에서 한국의 국익은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지난 3월 또다시 보수 대 진보의 총력전으로 대선이 치러졌다. 정권을 탈환한 보수는 국익론의 기치 아래 한·일 관계 개선을 향해 적극적 행보를 시작했고 기시다 정부도 이에 호응했다.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싹트고 있다. 여기서 나는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국익론으로 회귀한다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바퀴가 다시 수렁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0.73%포인트 차이로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국익론으로 모을 수 있겠는가? 국익론으로 치유론자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생각보다 국익론과 치유론의 갈등은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안적 치유론 모색해야
원래 국익론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 속에서 개별 국가가 취해야 할 행동 원칙이다. 기본적으로 강자에게는 지배의 논리로, 약자에게는 생존의 논리로, 중간자에게는 연대의 논리로 작용한다. 한국의 국익론자들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전제로 하여,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한·미·일 삼각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역사 문제로 인해 악화한 한·일 관계의 신속한 복원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피해자의 치유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치유를 유보·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고, 공공선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며, 국가 정체성조차 확고하게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정부가 국익론으로 경사된다면 진보 진영으로부터 기득권 옹호론, 나아가 강자의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부정적 평가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국익론의 강조와 회귀는 능사가 아니다. 여전히 한·일 관계는 국제정치와 외교에서의 일반론이 적용되기 어려운 특수한 측면이 존재한다. 국익론은 한·일 관계의 제1원칙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인문·사회 접근법에 해당하는 치유론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의 기축이 되었던 치유론의 의미와 그 한계를 성찰하고 대안적 치유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을 되레 공격하는 일본
원래 파트너십 선언에 담긴 치유론의 논리 구조는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가해자가 사죄와 보상을 통해 책임을 지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론적 치유론에 입각해 피해 당사자에 대한 치유가 진행되어 상당한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의 성격, 사죄의 진정성, 보상의 적절성에 대한 양국의 인식차로 인해 오히려 상처가 덧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이 주장하는 치유론에 일본이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고 역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과거 피해 당사자의 본원적 상처보다 현재 일반 국민의 파생적 상처가 더 커져 버렸다.
분명히 치유론은 국제적 차원의 탈냉전과 한국의 민주화 과정과 궤를 같이하며 인권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증대시키고 국제 규범을 고양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피해 당사자와 그들을 지원한 시민단체의 헌신적 노력이 한국사와 세계사의 진보에 미친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들이 품고 있는 높은 이상과 숭고한 이념이 온전히 실현되기에는 현실의 제약이 크다.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현실에서 국익을 손상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편적 가치는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 의의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국익 손상이라는 결과에 초점을 맞춰서 진보적 가치를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보수적 신념으로 전환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보수는 진보적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해서 그걸 가지고 진보 진영과 소통해야 한다. 나는 책임론적 치유론의 대안으로 포용론적 치유론을 제시한다.
진보 진영과 소통 절실한 역사문제
현시점에서 역사 문제의 초점은 본원의 문제가 아닌 파생의 문제다. 다시 말해 피해 당사자의 상처보다 반일과 혐한으로 양 국민의 감정에 새겨진 파생적 상처다. 이 상처는 어느 일방의 책임과 다른 일방의 치유로 종결될 수 없다. 역사 화해를 향한 책임을 공유하며 함께 치유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호 치유가 진행됨에 따라 비로소 남겨진 본원적 상처를 치유하는 길도 열릴 것이다. 관건은 상대를 포용하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제 한·일 관계를 개선할 시점은 무르익었다. 핵심 사안은 강제 징용 문제다. 일본은 한국에 해법을 제시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포용론적 치유론으로 무장하고 한국이 선제적 조치를 단행하자. 아마도 가해자 일본의 선제 조치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책임론적 치유론자들과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많은 국민이 반발할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이상,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 진영과의 소통의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그 순간에 국익론을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연출된 사죄로 국민의 마음을 현혹해서도 안 될 것이다. 책임론적 치유론의 성과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설명하며, 포용론적 치유론에 입각해 역사 화해를 진전시키겠다고 진심을 담아 설득해야 한다.
이때 소통의 순간을 통과하느냐의 여부는 이번에 강화된 시민사회수석실의 역할에 달려 있다. 포용론적 치유론으로 소통의 순간을 무사히 통과했을 때 국익론이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돼, 그 기반 위에 한·일 관계 수레바퀴가 힘차게 굴러갈 것이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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