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교수] 한·중 수교 30년: 대하소하, 사소사대
본문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수교 이후 두 나라 경제·무역·교육·교류 분야에서의 급속한 발전을 생각할 때 한·중 수교가 두 나라와 동아시아, 그리고 국제질서에서 갖는 무게는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그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국제 평화의 도정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수교 30년 전에는 두 나라가 세계전쟁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중 수교가 갖는 전환적 변곡점 역할은 더욱 분명하다. 한·중 수교가 없었을 경우를 상정해 볼 때, 한국과 중국의 발전과 번영, 한·중 관계와 교류의 증진, 그리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서 한·중 수교가 기여한 바는 결정적이었다.
지금은 한국·세계, 중국 역설 직면
‘가분수 국가’ 넘어 보편규범 절실
사소사대·대하소하로 절대평화를
무엇보다 두 나라가 대전쟁의 상대였다는 점과,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특수관계, 나아가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까지 고려할 때 당시 한국과 중국 지도자들의 비상한 결단과 돌파는 아무리 치하해도 부족하다. 특히 한·미 동맹 강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및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한·소 수교-한·중 수교를 통해 기존 동맹 강화, 과거 적대관계 해소, 비핵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3중·4중 외교 난제를 동시에 성취해낸 노태우 정부의 업적은 가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제 막 저개발 국가 단계를 탈출하여, 건국에서 부국으로 이행하려는 중국의 관점에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과의 수교는 필수적이었다.
지난 30년의 큰 걸음에 비추어 오늘의 한·중 관계는 여러 난관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중 관계를 넘어 중국에 대한 주변국가 및 세계 일반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이른바 중국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시장·세계공장·세계대국으로의 부상 이후 오히려 주변국가 및 세계로부터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같다. 무역·경제·군사·종합국력에서의 현실적 영향력과 미래 전망은 커지고 있으나 신뢰·호감도·상호인식·미래역할 조사에서는 나빠지거나, 적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억울하겠지만 국제조사들의 일관된 흐름이다. 따라서 중국은 그동안 중국부(富)·중국력(力)·중국몽(夢)의 달성에 집중해왔지만 이제 세계의 호감을 위한 마음, 즉 중국심(心)을 보여줄 때다. 세계에 중국심을 펼치고 얻기 위한 선도징표로서 한국 같은 이웃의 마음을 먼저 얻으면 된다.
한·중 관계는 두 개의 지반 위에 작동한다. 한국전쟁과 한·중 수교다. 한·중 수교 시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의 결정과 발발, 참전과 정전 과정에서 중국의 막대한 책임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넓은 도량을 읽어야한다. 반대로 중국인들은 아직도 한국전쟁을 한반도 내전이라고 왜곡하는 일방, 만약 내전이라면 자신들의 개전 연루와 직접 참전이 갖는 명백한 국제법적 불법성과 책임성에 대해서는 한번도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아 왔다. 완전 자기모순이다. 한·미 동맹조차 중국의 책임이 큰 한국전쟁의 산물이라는 점을 엄정히 인식해야한다. 즉 중국은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우려에 앞서 역사적 책임과 결착에 대한 마음이 우선이다.
둘째는 보편적 규범과 가치에 대한 존중이다. 중국은 지금 일종의 가분수(假分數)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경제·군사·기술 분야에서의 국제적 역할과 영향력은 커지는데 반하여 가치·제도·규범은 거꾸로 유교와 중국특색과 민족주의로 후퇴·역진하고 있다. 후자들은 루쉰과 마오쩌둥을 비롯 현대 중국의 창신과 발전을 추구한 인사들이 가장 비판한 준거들이었다. 역사적으로 가분수 제국과 가분수 국가들은 거대한 체구와 왜소한 생각의 충돌로 인해 생존과 발전을 지속한 전례가 없다. 중국이 물질적 발전에 맞추어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계를 위해 보편적 규범의 수용과 발양을 통해 가분수 국가를 넘어서길 소망한다.
한국으로서는 노태우 시기 3중·4중 지혜를 거듭 배워야 한다. 우선 외교문제는 진영과 여야를 넘어 국민적 합의에 기반하여 초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노태우 정부는 야당과의 소통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둘째 한·미 동맹 및 한반도 비핵평화·남북관계 개선의 주도가 한·중 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중 관계 미래를 위해 상호존중과 영구평화를 위한 근본 중의 근본을 생각해본다. 사소사대(事小事大 『맹자』 〈梁惠王〉장 하)와 대하소하(大下小下 『노자』 〈謙德〉장)의 지혜다. 사대사소와 소하대하가 결코 아니다. 주의해서 독해해야 한다. 사대에 앞서 사소가 먼저이며, 소하에 앞서 대하가 먼저다. 무릇 주권관계에 대와 소, 상과 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대국이 먼저 섬기고, 먼저 아래가 되어야 한다는 지혜다.
한국은 민주주의·자유·인권·국제규범에서 아시아 대국·선도국가라고 해서 우쭐해선 안된다. 중국은 인구·영토·군사·경제의 대국이라고 해서 위압적이어서는 절대 안된다. 특히 중국은 인류 대항해시대와 근대 동서조우 시대에 한반도에서의 대전쟁 및 전후(前後)의 한국에 대한 강압정책으로 인해 중국제국(명과 청)이 모두 멸망했던 선례를 깊이 학습하지 않으면 안된다. 절대경계 국가의 안정과 평화는 모두에게 절대 필수인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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