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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의 용단, 일본이 응답해야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3-06-01 11:07    1,90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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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우리 정부가 강제 징용공 배상 문제와 관련해 제3자 대위변제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한 이후 한·일 관계가 온기를 되찾고 있다. 한국 정부의 과감한 결정을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반응보다 더욱 눈에 띄었던 것은 미국 정부의 호응이었다. 당일 바이든 대통령은 “협력과 파트너십의 혁신적인 새로운 장”이라고 평가했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한·미·일 관계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비전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환영하는 워싱턴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과거 어느 정상회담보다 성공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모두 한·미 정상회담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드문 일이다. 북한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확장억제’(핵우산) 강화를 위한 워싱턴선언은 한·미 동맹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한국이 워싱턴을 움직이려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가장 효과적 수단이 되리라는 윤 대통령의 지정학적 판단이 성공한 것이다.

도쿄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던 기시다 총리는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 전격 방한했다. 한·일 간 복원을 약속한 ‘셔틀 외교’의 일환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조만간 다시 미국에서 회담을 갖기로 했다.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확장억제 협의체를 확대하여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당면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안보 환경은 매우 유동적이다. 미·중의 구조적 갈등과 대만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중국의 공조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불길하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러 공조를 핵· 미사일 개발에 이용하려는 북한의 움직임도 방치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윤 대통령의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협력 노력이 중·러를 자극할 염려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인 리스크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의 정세에서 ‘안미경중’ 패러다임은 유지되기 어렵다. 중간자적 입장에서의 균형자론은 양쪽 모두로부터 불신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보듯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것과 같이 첨단 기술의 거래가 초래하는 안보적 위험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큰 위기에 처해 있다. 한·일 간에 역사 인식 문제로 싸우는 동안 미·일·대만은 반도체 관련 대중국 연합 전선을 형성하였다. 여기에 한국이 제외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미·일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중국 궤도에 끌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당초 한국에 투자하려는 계획을 접고 일본 구마모토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큰 도전이다. 일본은 미국의 적극적 지원과 협력으로 다시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4대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과, 세력 균형 변화에 둔감해 20세기 초 나라를 잃어버린 구한말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을 견제하려는 영·미 지원으로 일본은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한반도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일본은 열강 간의 세력 변화 추이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면밀히 파악하고 영국과 동맹 관계를 맺어 이를 잘 활용하였다. 반면 대한제국은 독립을 지키는 데 필요한 동맹 파트너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는 운명이 되었다.

한·일 관계 개선과 안보 협력은 일본 입장에서도 중요한 지정학적 과제이다. 윤 대통령의 용기 있는 정치적 결단이 열매를 맺도록 기시다 총리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 한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이 악화하고 한·일 관계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돌아간다면 일본에도 전략적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적 사고가 양국의 정치 리더십에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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