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미 대선과 한미 동맹, 다양한 시나리오로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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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향해 러시아가 공격할 경우 보호 제공 여부를 방위비 부담과 연계하겠다는 핵폭탄급 발언을 했다. 이후 나토와 유럽연합(EU)국가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 대선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유럽이 결단할 시간이 오고 있다” “최선을 기대하지만 최악을 대비하자” “비상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독일은 더 민감해한다. 트럼프 1기 정부는 임기 말인 2020년 주독 미군의 3분의 1가량인 1만2000명을 일방적으로 감축하고 재배치하겠다고 통보한 적 있다. 바이든 당선 후 중단되긴 했지만, 독일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이런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유럽 국가들은 2016년 트럼프 정부 출범과 미국의 대나토 정책을 예상하지 못해 겪었던 수많은 갈등을 교훈으로 삼아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외교적으로 트럼프와 연결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채널을 가동하고, 군사적으로는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 불가론과 만일의 안보 공백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의 독자 방위력 강화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집권 시 동맹 기상도
이런 움직임은 한·미 동맹에도 상당한 함의가 있다. 한·미 동맹은 미국의 세계·지역 전략의 변화뿐 아니라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갈등을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는 방위비 분담 폭을 놓고 임기 내내 트럼프 행정부와 격렬한 마찰을 겪었다. 당시 한·미 관계에 관여했던 미국 고위 관료들은 회고록에서 주한 미군 감축을 검토했던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참여할 것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최근 국내외에서 열린 각종 회의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고려하면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예상되는 동맹 기상도를 그려볼 수 있다. 우선, 비용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거래 외교’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1기 때 ‘비용 분담(cost-sharing)’을 강조했다면 2기에서는 ‘역할 분담(burden-sharing)’까지 분담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듯하다.
둘째, 트럼프 2기에서도 한·미·일 안보 협력을 중시하고, 한·미 동맹을 핵심으로 여길 것이다. 미국이 21세기 지정학 갈등의 진원지인 인·태 지역에서 현상 변경 세력을 견제하는 ‘지역적 역할’에 한·일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2기가 들어서도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을 토대로 지역적 역할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시사한 것처럼 주한 미군의 ‘역할과 구성(configuration)’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미 주한 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 한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전 세계에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분쟁에 주한 미군을 차출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은 이미 3년 전 인준 청문회에서 “주한 미군이 한반도 밖 우발 사태와 역내 위협 대응을 위한 다양한 역량을 인·태 사령부에 제공할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했다. 주한 미군의 역할 증대는 주한 미군의 감축과 재배치로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브라이언 안보보좌관은 주한 미군의 규모보다는 역내 위협 억제를 위한 협력 방식을 강조하면서 주한 미군의 분산 또는 규모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넷째, 트럼프 측 일부 인사들은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할 경우 소규모 훈련을 자주,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창의적인’ 도상훈련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시에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연합 훈련의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고, 이는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주한 미군 감축 경험에서 대안 모색을
이 가운데 주한 미군 감축과 재조정 시나리오가 야기하는 안보·경제·심리적 함의는 매우 크다. 주한 미군 규모는 2008년 이래 현재의 2만8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한 미군 감축 문제는 1970년대 이후 한·미 동맹의 첨예한 갈등 사안이기도 했다. 닉슨 행정부는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안보 정책인 닉슨 독트린에 따라 7사단을 철수시켰다. 카터 행정부 역시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2사단 병력 1만5000명 철수를 시도했지만 3000명 감축에 그쳤다. 한국의 안보를 중시하는 주한 미군 지도부와 미 의회, 미 행정부의 외교 안보 부서, 미국 여론 등이 카터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경우,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1만2500명의 주한 미군을 감축했다. 트럼프 정부는 주한 미군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하며 한술 더 떴다. 다행히 미 의회가 연례 국방 수권법 (NDAA)을 채택해 주한 미군 규모를 2만2000명 이하로 줄이지 못 하게 하면서 감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측 인사들의 언급은 주한 미군에 대한 트럼프의 의구심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선 유럽 국가들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미리 대비하는 움직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한국의 안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미 갈등과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상정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세우고 차분히 대비해야 한다. 주한 미군의 추가 감축·재조정 문제가 대선 과정에서 대두하거나 대선 후 공식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 의회, 외교 안보 당국, 여론에 선제적 노력을 조용히 펼쳐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위협이 실존적 위기로 대두하고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면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국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인·태 전략에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다. 한국, 일본, 호주, 나토 등 동맹의 협조 없이 미국의 인·태 전략과 세계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마침, 러캐머라 사령관이 그제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동북아 안보를 위해 현 주한 미군 규모인 2만 8500명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따라서 이런 환경을 잘 활용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부터 후보들이 동맹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양 당이 이를 정강에 반영토록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우리가 미리 대비한다면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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