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의 한반도평화워치] 이제 외교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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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결과에 따른 희비가 교차한 지 9일이 지났다. 이제 국민 모두가 뜻을 모으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시간이다. 정치권에선 3년 뒤 치를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여당에선 정권 재창출을, 야당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전력투구에 나설 게 뻔하다. 또 각 정당 안에서도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도 예상된다.
그렇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총선 기간 실종됐던 외교에 대한 관심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이슈가 중심이 되면서 외교·안보 분야는 부각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면 대통령 선거는 경제와 외교·안보, 사회, 문화 등 국정 전반에 대한 능력이 평가의 대상이다.
특히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 외교·안보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한 사안이 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빠르게 진화하면서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또 미국과 중국은 기술·군사·경제·기술·이념 등 다방면에서 갈등의 폭을 넓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위기 앞에서 환율이나 국제 유가도 들썩인다. 대외적 상황이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엄중하고 위태롭다.
외교·안보를 둘러싼 국내 상황도 복잡하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존재하는 ‘친미·친일 대 친북·친중’, ‘동맹 대 자주’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여와 야가 건전한 정책적 논의를 통해 상호보완을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임에도 진영 논리를 앞세우며 상대를 공격하는 각 세우기는 여전하다. 외교와 국내 정치 상황이 항상 연관 작용을 해 왔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의 대립과 갈등은 국익을 위한 창의적이고 유연한 외교 정책의 장애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대선까지 향후 3년 동안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이번 총선에서 패한 여당 뿐만 아니라 거대 야당의 과제라 할 수 있다.
건강한 한·중 관계 절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지만 여소야대라는 제약 속에서 외교는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 분야에서 업적을 쌓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현 정부가 추진해온 협력적인 한·일 관계의 회복, 한·미 동맹 강화 및 활발한 한·미·일 협력체제 구축 등은 외교적 성과다. 특히 과거사 문제 등 불안 요인이 잠재해 있긴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정립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는 임기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견지하길 바란다. 한·일 관계 개선이 한·미·일 협력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다.
동시에 현 정부의 외교가 절반의 성공에 그치지 않으려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외교의 초석인 한·미 동맹을 우선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 한·중 관계가 훼손돼도 상관없다는 ‘제로섬’적인 접근은 옳지 않다. 오히려 공고한 한·미 동맹과 안정적 한·중 관계가 결합해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토양이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향후 어떤 국제질서가 전개되더라도 경제 대국이자 북한의 최대 후견국인 중국이 우리 경제와 안보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는 11윌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현재의 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소홀히 한 채 한·미 동맹만 쳐다보는 것은 안이하고 위험하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중국을 중시하는 야당의 입장을 수용하며, 안정적인 한·중 관계를 구축하는 노력을 한다면 협치라는 성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려 깊고 ‘당당한’ 자세를 잃어선 안된다.
외교 성과, 야당에도 책임
외교·안보에 여와 야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지지자 결집을 위한 시도라 하더라도 외교·안보에 있어 진영 논리는 자기 발목잡기다. 동맹이냐, 자주냐 하는 이분법적 진영논리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방식은 거대 야당의 품격에도 맞지 않는다. 야당이 진정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려면 정부나 여당의 외교정책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모자란 부분을 메우려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독자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 건강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야당 본연의 역할이기도 하다. 야당은 현실 외교에 직접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숨가쁘게 돌아가는 외교 이슈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축적하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경험 많은 당내 외교·안보 전문가를 활용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외교 전략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야당이 외교 전략 지도를 그릴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야권에서 뿌리가 깊은 반미 및 반 한·미 동맹 정서 문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도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 강화는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의 필수요소다. 한·미 동맹이 공고해야 건강한 한·중 관계를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친일파 문제에 집착하며 감정적으로 일본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그러지 못할 경우 야당이 설령 집권하더라도 임기 내내 한·일 관계의 벽, 갈등의 시간에 부딪힐 게 뻔하다.
외교적으로 한·미, 한·중, 한·일 관계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면서 공고한 한·미 동맹, 안정적 한·중 관계, 협력적 한·일 파트너십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한국 외교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국익을 최대화하는 길이다. 당파적인 경쟁과 그릇된 판단으로 우리가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정치권의 엄격한 소명이기도 하다.
국제 환경은 한국의 선거 기간이라고 봐 줄 만큼 녹록지 않다. 또한 외교·안보는 과거 어느 때 보다 국민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유권자들도 점점 눈을 뜨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복잡한 환경에 노출될수록 국민의 표심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다.
이혁 전 베트남 대사·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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