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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 한일관계 : 반일·협일·등일에서 포일로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9-07-16 10:30    4,89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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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일 안보동맹과 경제협력 대상인 세계 1·2위 경제대국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복판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세계경제 3위의 일본과 수출 6위의 한국이 최악의 격랑에 휩싸여있다. 한국에겐 이중 태풍이다. 난항의 북핵문제까지 더하면 한국은 3중 대외 악천후를 만난 셈이다. 

1945년 종전 이후 ‘48년 관계’의 반일, ‘65년 관계’의 협일(協日), ‘98년 관계’의 등일(等日) 전략이 모두 식민통치 역사로 인한 ‘한국의 공세’와 ‘일본의 수세’라는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 파동은 일본의 선공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한일관계 문법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부분적 망언이 아니라 일본 정부 전체의 공식적 공세라는 점도 크게 다르다. 

특히 공격의 제일목표인 반도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서 최대 수출품목이다. 오늘의 반도체 단일품목 수출액수가 20세기말 한국 전체 수출액에 맞먹는다는 점은 이 한국산품의 절대적 국가비중과 세계 시장점유 및 표준장악, 그리고 일본의 섬뜩한 공격준비와 목표를 한눈에 보여준다. 북한 핵무기가 꺽이기 전에 남한 반도체가 먼저 꺽이는 상황이 온다면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일본의 경제공격이 더욱 부정적인 이유는,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양국 세대에게도 상호 적대감정을 심어주어 미래 평화에 암영을 드리웠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민들에게는 이중가해로 다가왔다.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참혹한 인권피해자들이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해선 안된다. 즉 한일의 약속(위반) 문제를 정확히 짚자.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기존의 한일관계협정과 보편적 국제외교·인권규범들을 뒤집었는가? 아니다. 일본의 기존 판결·주장·정책과 논리를 따르더라도 이는 그렇지 않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56년 일·소 공동선언, 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일본 정부 내각과 법원의 애초의 일관된 해석은, “청구권 협정으로는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관점이었다. 즉 ‘외교보호권의 포기’였지 ‘개인청구권의 소멸’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한일협정 및 현재의 한국정부와 법원의 주장과 같다. 2007년의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즉 중국인 피해자와 니시마츠(西松)건설의 사례를 보라. 

그간 한국은 친일과 항일의 과거 이분법을 협일과 극일의 결합 담론과 전략으로 돌파한 바 있다.(반도체는 후자의 상징이다.) 그 후는 등일이었다. 이제 반일·협일·등일을 넘어 포일(包日)의 철학과 전략이 필요한 때다. 세계관 대전환의 평화철학자 퇴계를 생각한다. 조선의 일반 인식이었던 ‘야만’ 일본에 대해,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문명국가의 근본을 생각하며 그는 사대교린의 ‘교린’조차 넘어, 현실주의 지평에서 시비(是非)와 이해(利害)를 중용적으로 통합·지양하여, 등일과 포일의 관점에서 자강·선린·평화를 위해 일본의 화친 요구의 수용을 주장한다. 퇴계 이황의 포일 철학에 한 길이 있다. 

한말 안중근과 이승만의 등일·포일의 웅장한 기상도 같다. 3중 악천후를 맞아 안중근의 3중 평화지혜는 특히 상서롭다. 맹자의, ‘스스로 나라를 해친 뒤에 남이 나라를 해친다’는 자벌인벌(自伐人伐)론에 바탕한 합성산패(合成散敗)·내부연대·내부평화론- 하나가 되면 살고 갈라지면 죽는다-와, 중·러로 인한 방휼지세(蚌鷸之勢)를 고려한 한일 선린평화, 그리고 동양평화·세계평화의 웅대한 3중 영구평화구상이다. 남남갈등·북핵대치의 오늘 안중근의 내부연대·내부평화로부터의 영구평화구상은 꼭 긴요하다. 전범국가 일본의 국제사회 무임복귀를 가능케 한 한국전쟁과, 평화헌법 개정시도와 우경화의 한 빌미를 제공한 북핵문제에서 보듯 한반도 내부다툼은 자주 방휼형세였다. 

특히 아베정부의 대한 선공에는 미국 트럼프의 그림자가 함께 어른거린다. 하나는 제3의 탈아입미(脫亞入美)로 불릴 만큼,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적극 가담하여 미국-일본-인도-호주로 이어지는 미일협조체제, 트럼프-아베 신뢰관계의 그림자이고, 다른 하나는 미일 안보협약과 무역역조에서 트럼프의 대일 선공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한국희생·한국공격의 그림자다. 트럼프를 업는 동시에 막아내는, 교묘한 두 그림자 모두 한국에겐 정녕 간단치 않다. 

국가는 명분을 넘어 실리를 얻어야한다. 국가충돌의 피해자인 기업을 전면에 내세워선 안된다. 국가가 직접 나서 당국회담, 특히 문재인-아베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해야한다. 그리하여 문재인-아베의 2019년 관계를 정초해야한다. 

내면의식의 주체·자율·독립과 외면관계의 선린·공존·평화를 결합하려 한 퇴계와 안중근 선각을 떠올리자. 오늘의 동아시아 자유, 인권 및 민주주의 지형에서 이 말의 뜻은 무겁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시장경제를 넘어 인권·평화·세계시민의 더 높은 보편지평을 추구해야한다. 같이 아시아의 보편문명국가로 동행해야 한다. 한국은 민족과 명분을 넘어 세계와 현실로 나아가고, 일본은 인류양심과 이성을 회복하길 촉구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김대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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