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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2020년대의 9·11’ 전쟁…지구촌 복합위기 불러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2-06-29 10:42    3,114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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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전황은 어느 쪽도 결정적 승리를 얻지 못하는 소모전의 교착 상태에 빠졌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승리에 국가 생존과 정체성이 걸렸고, 서방 지원만 지속되면 버틸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도 전쟁 명분으로 내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 퇴진, 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포기와 비무장·중립화, 크림반도·돈바스 지역 영토 획득 등에서 성과 없이 물러설 수 없으므로 타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로써는 국지적 충돌이 지속하는 장기전이 되거나, 전선 교착으로 사실상 정전이 되는 ‘동결된 전쟁(frozen conflict)’이 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질서 변환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증대시켰다. 양분된 국제사회의 유사 냉전 상황은 유엔 집단안보체제를 무력화하고 지정학의 귀환과 강대국 정치의 함정을 불러왔다. 국제사회는 러시아 침공의 성공을 저지함으로써 규범에 입각한 국제 질서를 회복하고, 지정학 단층대에 있는 취약 국가들에 대한 불법적 무력 개입을 예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탈냉전 시대 종식을 상징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미국은 전략 우선순위가 대중 전략경쟁의 핵심인 동아시아에 있음을 선명히 했다. 미국이 개전 초부터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은 핵전쟁 위험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유럽 안보는 나토와 유럽 중심 대응에 맡기고 대중 전략경쟁을 우선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유엔 집단안보체제 무력화되고 강대국 중심 체제 가속
경제안보 대두하며 에너지·식량 공급망 잇따라 무너져
장기전 대비한 정치 리더십과 철저한 안보태세 절실
러시아, 핵무기 사용할 수도 … 북핵 억지 능력 강화해야


유럽 역사를 바꿀 획기적 사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말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중국은 국제 질서를 변경할 의도와 이를 뒷받침할 경제·외교·군사·기술 능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로, 중국이 제기하는 가장 심각한 장기적 도전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은 중동 지역의 안보 지형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미국의 전통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적 태도를 보이고,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석유 증산 요청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중동의 전략 지형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잠자던 유럽을 깨운 ‘2020년대의 9·11’이다. 필립 에티엔느 주미 프랑스대사는 “유럽 역사를 바꿀 획기적 사건(game changer)”이라고 진단했다. 중립을 고수하던 스웨덴·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선언하고, 덴마크는 유럽공동안보에 참여하기로 했다. 독일도 올해 국방비를 1000억 유로 특별 증액하는 한편 국방비를 GDP의 2% 이상 지출하라는 나토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나섰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조치들이 유럽 안보의 급속한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약 25%에 달하는 EU 국가들이 석유 수입 등 강력한 제재에 합의한 것은 파격적이다. 유럽 분열을 노렸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비(非) EU 국가들을 포함하는 유럽공동체 창설 제안,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의 EU 의사결정 방식을 제한적 다수결로 전환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EU 조약 개정 제안, EU 의회의 관련 회의 개최 제안 등 유럽의 전략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들은 유럽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럽, 중국을 도전 세력으로 대응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유럽의 긴밀한 협력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손상된 대서양 양안 관계 회복을 앞당기고 있다.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이 참여해 서방의 대중 정책 조정·협조를 모색하는 흐름은 조 바이든 정부의 동맹 회복 노력이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진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북미·유럽의 3각 협력으로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전략적 안정을 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 2월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회담에서 ‘제한 없는 우호 관계’를 확인했던 중국에 큰 딜레마다.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러시아와의 협력이 중요하지만, 침략을 옹호하는 데 따른 국제사회 내 정당성 손실과 서방의 2차 제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중국을 도전이면서도 기회라 보던 유럽이 이제는 도전 세력으로 대응 방향을 바꾸고 있는 점도 아픈 부분이다.

2020년대 후반 대만과의 군사적 통일 가능성을 엿보는 중국으로서는, 러시아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작전 수행 능력은 대만 문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도 유가 상승으로 당면한 채무불이행 위기는 피할 수 있었지만, 중장기적으로 제재 효과와 외국 기업, 지식인의 탈출로 경제의 장기 하락 추세를 앞당길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제2의 아프간전’ 악몽이 재현되며 러시아의 국력과 국제 위상을 떨어뜨릴 것이다. 중국 부상에 대응을 서두르는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극을 받아 인도태평양 정책의 적극적 추진과 함께 GDP의 2% 수준까지 방위비를 증액하고 공격 능력 보유를 위한 행보를 재촉할 것이다.

향후 2년간 세계 경제 침체될 듯

미국·유럽은 10대 경제력을 가진 러시아에 범위·속도·규모 등에서 유례없는 강력한 제재를 발동함으로써 세계 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 경제안보 우려 증대로 세계 공급망과 상품·서비스·투자 시장의 파편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올해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를 당초 4.1%에서 2.9%로 내리고 향후 2년간 세계 경제 부진을 예측했다.

서방 국가들이 주요 20개국(G20) 등 세계 경제 조직에서 러시아 참여를 거부하면서 세계 경제 운용 체제의 분절화를 가져오고, 막대한 우크라이나 지원 수요는 개발 원조와 탄소 중립 추진 자금 조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많은 다국적 기업이 자발적으로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듯 기업 활동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 적용이 강화될 전망이다. 한편 반세계화 추세에 힘을 실어 ‘지연세계화(slowbalization)’ 현상이 깊어지면서 세계 경제와 무역의 성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지정학의 재편을 가속할 전망이다. 유럽이 2030년까지 러시아 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하려는 계획을 조기 이행함으로써 신재생에너지·원자력 등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단기적으로 러시아산 원유·가스·석탄 제재로 세계 에너지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에너지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여 기후변화 대응에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 복합 위기 도래

러시아가 전쟁 초기 핵무기 사용 위협과 함께 관련 부대 훈련을 시행함에 따라 전황이 불리해지면 전술핵을 사용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종래 공포의 균형에 의한 핵무기 불사용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유동적 전략 환경 속에 핵무기가 실제 전장에서 사용될 위험이 커지고, 핵무기 위협으로 재래식 전쟁 수행에 큰 제약이 부과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전술핵 개발과 핵 사용 의사를 천명하는 공격적 핵 교리에 비추어 우리의 북핵 억지·방어 능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곡물과 비료의 주요 생산·수출 국가라는 점에서 전쟁으로 인한 생산·수송 차질은 아프리카·아시아·중동에 식량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2010년대 초 ‘아랍의 봄’이 식량 문제에서 촉발됐듯, 식량 위기는 고금리, 외환 고갈, 인플레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개도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스리랑카 사태처럼 국제 안보 위기 요인으로 등장할 위험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가의 생로병사에 큰 교훈을 던지고 있다. 독립 후 31년간 두 차례의 오렌지·유로마이단 혁명을 겪을 만큼 정치 혼란, 외교 혼선, 사회 분열, 부패로 병들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에 버티는 것은 위기 대응 정치 리더십, 정체성 확립, 철저한 안보태세, 국가 생존을 위한 국민의 결기 및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원 덕분이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 파상적으로 닥칠 복합 위기의 대응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외교부 차관, 리셋 코리아 외교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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