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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북한이 이겼다”는 위험한 착각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2-11-10 10:24    74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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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에 대한 비관론이 들끓고 있다. 한 외국 언론은 “북한이 이미 이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핵화라는 정책 목표를 이제 포기해야 한다는 전문가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남북 간 군사 충돌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드러난 상황만 보면 그렇다. 2019년 10월 스톡홀름에서의 북미 실무 회담을 끝으로 김정은은 미국의 대화 촉구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올 9월에는 핵의 선제 사용 가능성을 명시한 법을 제정했다. 최근에는 연이어 미사일과 포 사격을 감행하고 있다.

북한이 보여주려는 것만 쳐다보면 대북정책은 실패한다. 김정은이 감추고 싶은 사실을 간파해야 성공할 수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를 위해 강점은 드러내고 약점은 숨기려 한다. 운동경기로 비유하면 북한은 핵 고도화와 군사적 긴장 조성을 공격수, 경제적 자력갱생을 수비수로 운용하고 있다. 공격수로 한미를 압박해 비핵화를 포기하게 만들고 군축과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려 한다. 경제위기를 자력갱생으로 막는 것은 수비의 역할이다. 그 핵심은 취약성을 숨기고 성과를 강조해 상대에게 난공불락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실상 수비는 해체 상태다. 핵 개발이 경제에 미치는 기회비용은 연 1조 원(남한) 이상이다. 김정은의 집권부터 제재가 작동하기 이전인 2016년까지 북한 경제는 연평균 2∼3% 성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2017년부터는 연평균 성장률이 -3-4%로 급락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중반의 북한 국민소득을 20조 원으로 추정할 때 적어도 5%, 즉 1조 원 정도를 2017년부터 해마다 잃고 있는 셈이다. 미래도 암울하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는 한 경제는 정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비핵화 없인 제재를 해제 받기 어렵고 그 결과 북한으로 대규모 투자자본이 유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를 이긴 독재자는 없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소련의 레닌은 극단적인 사회주의 이념을 실천에 옮겼다. 화폐와 시장을 없애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했으며 중앙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4년 만에 제조업 생산이 70%나 감소하자 백기를 들었다. 화폐와 시장을 재도입했으며 토지와 소기업의 사유권을 인정하고 중앙계획도 포기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그가 일으킨 대약진운동으로 2500만 명 이상이 기근 등으로 사망하자 국가주석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룬 것 없이 권좌를 물려받기만 한 김정은의 카리스마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끈 마오쩌둥보다 훨씬 약하다. 성과로 능력을 입증해야 장기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그에게 핵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에 가깝다.

공격도 압도적이지 않다. 핵을 가졌으니 군사적으론 북한이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군사력은 상대적이다. 핵을 보유함으로써 북한 군사력이 강해진 것은 틀림없지만 한국의 재래식 전력도 진화했다. 북한의 위협이 심해질수록 한미의 확장 억지도 강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은 자원의 싸움이다. 북한 경제 규모는 남한의 1%에 불과하다. 북한 핵 개발은 남북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자원의 격차를 확대할 따름이다. 수비는 해체 상태인 데다 공격도 상대를 압도할 수 없는 북한이 어떻게 승자가 될 수 있나.

김정은의 연이은 무력도발은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라는 고백과 같다. 그가 이미 이겼다면 도발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북한 경제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1995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고난의 행군이 199798년 절정에 달했듯 향후 2∼3년이 김정은에게 결정적인 시기다. 핵과 경제 사이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지금의 도발은 그 시기가 오기 전 ‘핵과 경제를 병진’하겠다는 노림수다. 군사적 긴장 조성으로 판을 흔들어 한국이나 미국의 악수(惡手)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다.

우리는 패닉에 빠져 과잉 대응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의 격한 도발은 예상된 것이다. 김정은이 순순히 비핵화를 할 것이라며 순진하게 대응했던 까닭에 몇 년을 허비했을 뿐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하면서도 냉철해야 한다. 당장 핵 무장하자거나 남한에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인 과잉 대응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기와 한미공조 균열이 바로 북한이 노리는 바다. 더욱이 남북 모두 핵을 쥔 채 대립하면 한반도의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또한 정부는 제재 모니터링과 집행을 위해 인력과 예산을 늘리고 기업, 금융권과도 체계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광물 수출을 차단하고 가상화폐 해킹을 막아 북한으로의 외화 유입을 줄여야 한다.

북한이 이겼다는 주장은 착각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이 주장이 드세질수록 김정은은 자신의 계략이 맞아떨어졌다고 믿고 군사 도발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김정은이 준비한 불꽃놀이만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감춘 의도와 전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정책을 세워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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