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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강제징용 문제에서 찾아야 할 교훈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3-03-15 10:25    2,29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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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았다. 우리 기업이 대신 변제하는 방안이다.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한 대법원의 판결과 사뭇 다르다.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로 시작된 징용문제는 심대한 파장을 야기한 후 이렇게 귀결됐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강력히 반대한다. 여론도 다수가 부정적이다. 국론은 분열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는 한일 관계개선과 한미일 협력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부정적 여론이 정부의 정책 동력을 제약할 것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징용문제의 경과를 돌아보면 한국외교의 취약점이 다 드러난다. 이를 냉정히 되짚어 교훈을 찾아야 한다. 


애당초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은 외교 문제에 대한 사법적 자제라는 통념을 벗어난 것으로서, 징용문제는 한일조약으로 해결됐다고 보던 정부에게 엄청난 난제를 안겼다. 첫째 난제는 국제조약과 국내판결 간의 괴리였다. 일본은 조약으로 끝난 문제라는 입장이다. 국제사회의 다수는 일본에 동조한다. 둘째 난제는 일제 시기 피해에 민감한 국민감정이다. 다수 국민이 대법원 판결을 지지한다. 셋째 난제는 피해자의 특별한 이해와 국가의 전체적 이해를 교량하는 일이다. 피해자 위주로 판단하면 한일 관계가 악순환으로 들어가 큰 국익이 손상될 수 있다. 이 난제를 총체적으로 풀어야 했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대처는 난제 풀이와 거리가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적극 대응을 피했다. 일본이 대법원 판결을 거부해 소송이 계속됐으므로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법원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8년 최종적으로 김능환 대법관과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과 피해자의 이해를 중시했다. 법원은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했다. 일본은 압류자산을 현금화하면 강력 대응한다고 공언했다. 한일이 치고받기를 할 공산이 컸다.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가운데 들어온 윤석열 정부는 우리 기업의 대신 변제를 검토했다. 일본 자산을 현금화할 경우 부작용이 크므로 고육책을 꺼낸 것이다. 유사한 해법을 민주당 출신 문희상 의장이 제안한 바도 있었다. 이는 국내판결보다 국제조약에 가까운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또 전체 국익을 위해 피해자의 특별 이해는 다른 방법으로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해법이 국민감정에 어긋나기 쉽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둘째 난제에 대처할 필요성이 대두한다. 사실 우리 쪽이 배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난 10년간 문제의 핵심은 어떤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쳐 해법을 도출하느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온 나라와 한일관계를 휩쓸어 갈 정도였으므로 그 수습도 거국적 차원에서 중지를 모아서 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필자는 진보·보수를 망라하는 초당적 현인회의를 구성해 해법을 도출하고 여론을 수렴할 것을 수차 주창한 바 있다.

그러나 진보·보수할 것 없이 상대 진영의 의견을 모으는 정치적 프로세스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현 정부도 혼자서 제3자 변제안을 입안하고 이해관계자와 접촉하는 행정절차를 진행했다. 그리고 일본과 협의를 했다. 일본에 피고 기업의 출연을 요청하고 사과 수위를 논의했다. 일본은 특유의 미시적이며 법률적인 접근으로 일관했다. 조약으로 끝난 문제에 호응하기는 제약이 있다는 식이었다. 4월 선거를 앞둔 일본으로서 정치적 부담도 느꼈을 것이다. 정부는 일단 해법을 공표하고 일본의 호응은 추후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 혼자 성안한 양보성 해법인 데다가 일본의 호응도 적어 부정적 여론이 비등했다.

만일 진보진영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3자 변제든 중재위원회든(65년 합의상 분쟁해결 절차는 중재위다) 해법이 도출됐다면 반대가 이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일·방미·G7 외교도 더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만일 정부가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협상을 해 일본의 호응을 더 얻었다면 여론의 반응은 나았을 것이다. 예컨대, 일본이 인색할 경우에 대비해 제3자 변제 이외의 플랜B 해법을 가지고 협상하거나, 일본이 4월 선거 전 유연성을 보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선거 이후까지 협상을 밀고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만일 대법원이 사법적 자제를 했다면 어땠을지, 이제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성찰해야 한다. 관련한 사회적 논의도 있어야 한다.

혹자는 지난 일을 논해 무엇하느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11년 전 대법원 판결로 시작된 징용문제는 한국 외교에 많은 상흔을 남기고 이렇게 끝났지만, 뒤끝이 작렬하고 있다. 분열된 국론과 자극된 국민감정은 한일관계에 새로운 난제다. 이에 대처해 나가는 데 징용문제의 교훈은 유용할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국 외교가 개선의 길로 갈 수 있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징용문제가 한국 외교에 가한 상흔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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