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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 지난해 미·중무역 사상 최대…갈등과 협력 함께 봐야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3-06-01 13:08    1,11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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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세계의 양강을 구성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많은 시나리오와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곧 대결과 충돌로 치달을 것이라는 주장부터 평화 공존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많은 예상이 존재한다.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두 대국의 관계이니 만큼 관심의 집중과 다양함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범람하는 많은 주장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상당히 많은 진단과 주장이 실제 역사보다 이념적·종족적·문명적 편견과 오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오진은 바로 미·중관계 자체에 대해서다. 첫째로 미·중관계에서 갈등과 대결의 측면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협력과 공존의 측면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갈등이 체제와 가치의 측면이라면 협력은 시장과 구조의 측면이다. 아직 열려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정치와 경제, 관료와 기업, 외교와 교역의 차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미·중무역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은 갈등만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역사 오해 역시 심각하다. 20세기의 공산당 1당체제 국가 중 살아남은 대표적인 세 나라는 중국·베트남·북한인데, 그들은 모두 동아시아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냉전 시기에 미국과 직접 대규모 전쟁을 치른 나라들이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이점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말한다. 한국 역시 이들 세 나라와 직접 대전쟁을 치른 나라였다는 점에서 미국과 함께 유이한 사례였다.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얄타체제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의 연장전이 없었다. 그리하여 소련 해체·탈냉전·동구 붕괴·독일 통일은 곧 2차대전 전후 체제인 얄타체제의 종식을 의미했다. 사회주의도 종언을 고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근본적 차이

그러나 2차대전 종식 이후에도 중국혁명·한국전쟁·베트남전쟁이라는 세 번의 연장전을 통해 냉전시대의 대전쟁을 치러낸 동아시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쟁의 동맹과 적대, 즉 국제 편대에 관한 한 유럽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진영과 연합하여 주축국에 맞선 때의 사회주의였다. 그들은 비군사적 대결상태인 냉전을 제외하면 자본주의 진영과 직접 충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의 군사적 전쟁을 치른 체제였다. 그것도 세계 최강 미국과의 전쟁을 치른 나라들이었다.

따라서 한국과 세계는 한 세대가 경과한 탈냉전에 대해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탈냉전이 실제 국가체제와 이념구조에 관한 한 소련과 동구의 붕괴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물론 독일 통일을 포함해 사회주의 가치의 조종과 종언도 분명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이 ‘하나의 전체로서’ 모두 몰락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성찰과 평가가 필요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실 사회주의의 변형과 재형성, 변혁과 적응을 통한 연장과 재등장에 대한 오랫동안의 무지와 간과에 대한 반성을 말한다. 중국을 포함해 그것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이른바 자기변태와 변형전이를 통해 재등장한 것이 아니라, 물밑에서는 사실 계속 지속하고 있던 내면 속성이자 체제였던 것이다. 실제로 안에서는 헌법 조문과 체제 가치도, 권력구조와 정당 명칭도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는데,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고 외부에서 의제한 측면이 더 크지 않았나 하는 데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탈냉전, 우파·좌파의 동시 오판

따라서 이 문제는 탈냉전 이후 세계의 학문과 담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요한다. 요컨대 “세계체제 밖은 없다” “세계화의 밖은 없다” “시장경제 밖은 없다”는 동일한 전제에 근거한, 우파들의 오만한 승리주의-역사종언론과 좌파들의 전일적인 (세계)다중(多衆)저항론-세계내전론의 동시 오판과 동시 오류를 말한다.

역사에 단급하고 무지했던 둘은 끔찍할 정도의 오류였다. “세계체제 안에서” “세계화 물결에 올라타서” “시장경제보다 더 시장적으로”, 그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국이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를 고수하는 가운데 일정한 대안 질서의 구축과 체제 도전 수준으로까지 성공할 줄은 세계의 담론과 지식, 정책과 대응은 철저히 놓쳐왔던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중국의 급속하고도 긴 부상이 40~50년에 걸친 ‘미·중 장기협조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은 그동안 간과되어 왔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대 동안 미국과 중국은 소련에 대한 견제·봉쇄·붕괴라는 이익에서 완전히 일치하였다. 미국과 중국은 1970년대 이후 소련 견제와 붕괴를 위해 서로를 최대한 활용하고 협조하였다. 최근의 무역갈등에 이르기 전까지 미국과 중국 경제의 호황과 발전은 각각 중국의 저임금과 저가생산, 미국의 특혜와 중국의 세계시장 진입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들 사이의 역사상 보기 드문 ‘장기 협조체제’였다.

소련 차별과 중국 우대의 이중주

초기의 데탕트와 미·중수교를 제외하더라도, 1980년대 공산제국을 붕괴시킬 때 레이건 정부의 소련에 대한 차별과 중국에 대한 특혜는 놀라웠다. 이를테면 1985년 2월 파리에서 개최된, NATO 회원국 및 일본이 참석한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에서 군사 목적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컴퓨터와 통신장비의 수출 통제 강화를 포함하여 소련권에 대한 서방측 민간 고도기술의 수출품목 규제를 더욱 체계화하였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고도기술의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정반대였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1985년 6월 대중국 상업 목적 고도기술의 수출을 자유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는 달리 일본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약과 압박을 가하였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20·30년의 국제적 뿌리요 단초로 지적되는 플라자합의(1985)와 미·일 반도체협정(1986)을 말한다. 가치와 이념의 측면에서는 둘 다 이해할 수 없는 합의였다. 기술과 시장점유율에서 역사상 어느 세계제국보다도 막강한 철옹성이었던 일본의 ‘전자제국’과 ‘반도체제국’은 이후 몰락해갔다. (물론 이 요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세계 반도체 1, 2, 3위 기업을 포함해 세계 10대 상위기업 중 6개가 일본기업이었으나 오늘날 일본기업은 하나도 없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안보와 가치와 이념 면에서는 철저히 같이 갔다. 마치 당시 중국과 경제와 무역 면에서 같이 갔듯이.

미·소·중과 미·일·중, 두 개의 3각관계

오늘의 중국은 미국-소련-중국의 하나의 긴 3각 관계와, 미국-일본-중국의 또 하나의 긴 3각관계를 보면 자명해진다. 전자의 3각 관계에서는 미·중은 철저하게 소련의 봉쇄·고립·붕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였다. 후자의 3각관계에서는 일본 억압과 중국 배려가 두드러졌다.

그 두 개의 3각관계 중심에 미·중 무역과 경제 관계가 관통하고 있었다. 이념과 국익의 공존을 말한다. 물론 이 두 3각관계의 또 하나의 혜택 국가는 단연 한국이었다. 한·미동맹과 안보강화, 한·중수교와 무역흑자, 한·일의 전자·반도체 역전을 말한다.

외교가 즉 통상, 안보가 즉 경제

한국은 과거 세계 냉전(cold war)과 오늘의 세계 반도체전쟁(chip war) 모두의 세계 중앙이다. 전자는 이념과 장소로, 후자는 공급망과 기술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최고의 가치와 최고의 이익은 같이 간다. 생존과 주권의 문제는 최고의 가치인 동시에 최고의 이익이다. 한국은 건국 이래 외교와 통상이 국가의 가치수호와 이익증진의 제일 통로이자 동시 경로였다. 외교가 통상이고, 안보와 평화가 경제요 국익인 나라다. 둘을 분리하거나 어느 하나의 맹목에 빠지면 안 되는 까닭이다.

특히 소련 ‘이념’ 제국과 일본 ‘반도체’ 제국의 동시 붕괴에서 보듯이, 가치와 이익의 서로 다른 칼을 갖고 당대 ‘정점의 패자(霸者) 때리기’에 익숙한 제국들과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경계의 중심과 정점의 패자는 늘 협공을 받는다. 가치와 이익, 자유민주주의와 반도체는 얼마든지 함께 지킬 수 있는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은 건국 이래의 지난 외교와 통상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그 지혜를 놓치면 안 된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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