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AI 기술’보다 더 중요한 ‘AI 거버넌스’
본문
1970년 11월 18일 오클랜드 트리뷴지는 미국 경제개발청이 추진한 오클랜드 항만 개발사업이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경제개발청이 오클랜드 해군기지와 항만을 개발하여 이 지역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이다. 버클리 대학의 윌답스키(A.Wildavsky) 교수와 프레스만(J.Pressman) 교수는 이를 『집행론(Implementation)』이라는 책을 통해 잘 분석했다. 실패 요인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는 찬성했지만 정책 집행 과정에서는 소극적이어서 결국 의도했던 정책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에는 집행과정의 문제를 사전에 고려해서 디자인해야 한다는 이론적 함의를 이끌어냈다.
AI의 등장은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인류 문명사에 새로운 지평을 펼쳐준다.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이 공진화하게 되면 인류 문명은 획기적으로 바뀐다. 구글의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29년이 되면 인간 지성을 초월하는 AI의 등장이 가능하고, 2045년경에는 초지성(super intelligence)으로 인류 문명사는 특이점에 도달한다고 예견한다.
AI 국가전략으로는 세 가지 요소를 꼽는다. 하나는 AI 구현을 위해 수만 개의 GPU를 장착한 컴퓨팅센터이고, 다른 하나는 AI 기술개발과 운영을 담당할 인재이고, 또 다른 하나는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이다. 미국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730조원을 투자하는 컴퓨팅센터를 구축한다. AI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EU도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에 300조원을 투자하고, 프랑스도 AI데이터센터에 163조원을 투자한다. 싱가포르는 국내외 불문하고 AI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에게 매달 670만원의 생활비를 지불한다고 대대적 모집 광고를 냈다. 개인정보보호에서 자유로운 중국은 다양한 빅 데이터를 활용하여 고성능 AI 모델인 딥시크를 구현해냈다. 이제 우리 정부도 소버린 AI를 개발하기 위해 10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AI 컴퓨팅센터를 구축한다고 한다.
지난주 한반도평화오디세이의 일원으로 중국 상해와 항주의 AI와 로봇 첨단기업들과 딥시크 개발의 원류인 저장(浙江)대학을 방문했다. 이들 기업 중 한 곳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AI 개발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인 컴퓨팅 파워, 인재, 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이 AI 거버넌스라는 것이다. 즉 기술적 요소보다 사회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 시스템은 20세기 대량생산체제의 산물이다. 대량생산체제는 세분화되고 표준화된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규모의 경제로 전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에 조직은 대형화되었다. 따라서 제조업 생산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인사, 조직, 재무 등 사무직 업무도 확대되고 관료제화되었다. 이제는 관료제화된 많은 일은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고, 제조 공정의 일들은 로봇이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법률, 의료, 금융, 교육, 예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AI 국가경쟁력은 AI 기술 자체보다 AI 활용에 달려있다. 기존 사회시스템이나 업무를 AI로 대체하면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일의 양상은 단순반복적 일에서 창의적인 일로 바뀌어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기존 업무 관련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켜야 한다. 기존의 일을 AI가 대체하는 것을 거부하고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면 AI 활용은 무의미해진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제도가 발전된 우리나라는 전 국민의 의료 데이터가 잘 갖추어져 있지만 각 병원이 의료 데이터를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면 의료 AI의 개발은 어려워진다. 법률 데이터도 모든 판례가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어 있지만 법조인만 접근이 가능하면 판례 분석 AI 개발은 불가능하다. 제조업에서도 기업들이 정보유출을 두려워하여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줄 제조용 AI 개발은 어렵게 된다.
따라서 AI 컴퓨팅 센터, AI 인재,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AI가 기존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학습하도록 AI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AI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이런 거버넌스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데이터 접근을 막게 되면 아무리 좋은 컴퓨팅 센터나 소버린 LLM모델을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실용주의 정부를 표방하고 AI로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는 새 정부에서 선행해야 할 전략은 새로운 AI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AI가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제거하는 정책을 설계하지 않으면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그 효용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