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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서울대 교수] 관세, 쿠팡, 그리고 ‘절전 모드형’ 한미 FTA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6-09-01 14:16    1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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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이 관세-투자합의에 이른 지 꼭 1년이 되었다. 그간 관세는 요동쳤다. 합의의 출발점인 상호관세는 무역수지 관세로 갔다가 지금은 301조 관세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도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 한번 중간 점검을 해 볼 때다.

많은 이가 궁금해 한다. “이제 관세 조치의 미래는 어떤가? 과연 법적, 정치적 생명력이 있나?” 점치기 쉽진 않지만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도, 2년 후 새 행정부가 출범해도 큰 변화는 없지 않을까 한다. 명목과 방식을 달리하며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크게 두 이유다. 


먼저 마음에 걸리는 건 관세의 진화다. 지난 18개월 확인된 건 여러 루트로 관세 부과가 가능하단 사실이다. 웬만한 미 법령은 한 번씩 테스트를 거쳤다. 각각의 한계와 외연이 정리되고 있다. 시행착오를 통한 정교화 과정이랄까. 이에 대한 법적 도전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현실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강제노동 관세를 포함, 지금까지 확정된 조치로만 향후 10년간 9500억 달러(약 1389조원) 수입이 예상된다고 한다. 앞으로 여러 명목의 301조 관세가 더해 지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매년 최소 100조원의 돈이다. 어느 행정부도 포기하긴 쉽지 않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 관세를 일회성 문제 해결 대상이 아닌 상수(常數)로 전제한 대응이 필요하다. 당장 해결이 어려운 일이라면 현상의 안정적 ‘관리’가 최선이다. 워싱턴이 관세 카드를 들고 조였다 풀었다 하는 상황이 이어질 테니 흐름의 변화에 맞춘 관리가 긴요하다. 미시적 기업 실무에도, 거시적 한·미 관계 유지에도 필수적이다. 사실 본격적인 관세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스라이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이 작업에서 다시 눈여겨볼 곳 중 하나는 한·미 지유무역협정(FTA)이다. 원래 관세 ‘철폐’를 핵심 목표로 맺은 협정이다. 14년만에 이 목표는 자취를 감췄다. 협정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핵심 기능이 차단된 일종의 ‘절전 모드’에 빠졌다. 그런데 이 모드에서 쓸모 있는 기능 하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다양한 분야 채널과 협의 체제다. 신관세시대 관리 작업의 기본틀로 활용할 만하다.

가령 여기엔 지금 주요 현안인 관세, 비관세, 디지털, 노동, 경쟁, 투자 문제를 위한 여러 창구와 경로가 마련되어 있다. 숫자가 의미 있는 건 아니지만 위원회 9개, 작업반 6개, 협의회 10개, 그리고 그 위에 공동위원회가 있다. 이를 묵혀 둘 이유가 있나. 이 중 몇 개만 부지런히 돌아간다면 앞으로 관세를 둘러싼, 그리고 관세와 연동돼 전개되는 여러 형태의 양국 갈등을 조정하고 긴장을 낮추는 다리와 광장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양국 관계의 뜨거운 감자인 쿠팡 문제도 그러하다. 소통과 협의가 매끄럽지 않고 공전하고 있단 방증이다. 빠른 해결도 가능했던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안정적이고 체계화된 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이런 FTA내 인프라는 우리 국내적으로도 유용하다. 입장이 서로 다른 관계 부처간 협의와 조율의 기한과 버팀목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 부분이 아쉽다.

한·미 FTA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자는 게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에서 “자유(Free)”가 사라지고 “울타리(Fenced)”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할 현실이다. FTA지만 FTA가 아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미국과 여러 현안 논의와 소통에 이만한 다리와 광장을 찾거나 다시 만들긴 어렵다는 뜻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쓸모를 찾아보자.

그러자면 먼저 아이디어를 갖고 나서야 한다. 가만 있으면 아무 일도 없다. 그간의 ‘FTA 침묵’은 어느 모로도 이상하다. 18개월 롤러코스터에도 거의 언급이 없었다. 아마 이야기를 꺼내는 게 무의미하단 판단이었을 것이다. 일정 부분 맞다고 본다. 그러나 먼지가 가라앉고 관리 단계로 들어간 상황에선 다르다.

미국은 20개국과 FTA를 맺었다. 중남미의 칠레·콜롬비아·코스타리카·도미니카공화국·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파나마·페루, 중동의 바레인·이스라엘·요르단·오만, 그리고 호주·싱가포르·모로코·캐나다·멕시코·한국까지. 다채로운 명단이다. 그러나 관세 직격탄을 맞는 제조업에서 미국과 의미 있는 교역을 하는 나라는 이 중 캐나다·멕시코·한국뿐이다. 지금 캐나다, 멕시코는 미국과 3국 FTA(USMCA) 평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야속하지만 관세 전쟁에서 두 나라는 나름 FTA를 도구로 굴리고 있단 뜻이다. 이 둘마저 빼면 한국밖에 없다. 우리만 가만히 있는 꼴이다.

이제 미국발 관세는 고착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처음 관세 부과가 가건물 느낌이었다면 점차 콘크리트 구조물로 굳어가고 있다. 전혀 새로운 교역 방정식을 어떻게 ‘관리’할 지는 우리의 숙제다. 핵심 기능은 차단되고 속도도 떨어진 절전 모드지만 일단 한미 FTA의 숨은 쓸모를 살리자.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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