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의 한반도평화워치] 4자회담의 교훈…미·중 결단 끌어낼 정밀한 전략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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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여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7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교전 당사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힌 지정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평화협정 체결 주체와 관련해 북한이 주장한 남북 평화협정(1965~1974), 북·미 평화협정(1974), 남·북·미 3자회담(1984)과 한·미가 제안한 남·북·미·중 4자회담(1996), 그리고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별도 포럼 등 다양한 방식이 거론되거나 시도돼 왔다.
평화체제를 가장 진지하게 다룬 시기는 김대중 정부의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구상’과 미 클린턴 행정부의 ‘페리 프로세스’가 작동할 때다. 2000년 10월 12일 채택된 북·미 공동커뮤니케는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가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반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흐지부지 됐다.
번번이 좌절된 평화협정 체결 시도
평화협정 체결이 어려움을 겪자 대신 등장한 게 종전선언이다. 정전체제가 장기화함에 따라 단기간에 평화협정 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평화협정으로 들어가는 입구, 또는 전 단계로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정치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핵이 해결되면 북한과 안전보장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뒤, “안전보장협정, 평화협정, 종전선언, 전쟁종식 등의 용어를 특별한 개념 구분 없이 혼용”해 사용하면서 시작됐다.(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부시 대통령이 제기한 종전선언에 노무현 대통령이 의미를 부여해 ‘정치선언’으로 공식화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4 선언에 이를 포함하자고 제안해 남북 합의로 남았다. 그러나 남북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2007년 10·4 선언, 2018년 4·27 판문점선언)을 추진했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
냉전시대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평화협정 주장을 주한미군 철수를 노린 위장평화공세로 인식하고 무시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한 이후 한·미가 완전한 비핵화에 주력하면서 평화협정 체결 문제는 뒤로 밀렸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하고, 이어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추진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당시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까지 조율하며 세부 논의를 진행했으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 백악관 참모진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볼턴 같은 참모그룹은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며 트럼프의 발목을 잡았다”고 회고했다.(문재인, 『변방에서 중심으로』)
북·미는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이는 미국이 기존의 ‘선(先) 비핵화’ 입장에서 물러나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안보 대 안보’ 교환 차원에서 다루려 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에 나서며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논의는 뒷전이 됐다. 하노이 노딜 이후 문 대통령이 2019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했으나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단절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고, 핵보유 ‘절대불퇴’를 선언함에 따라 종전선언 추진 역시 동력을 상실했다.
북한의 두 국가론과 4자회담 한계
이 대통령이 이번에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논의를 제안한 것은 북한의 선 비핵화가 어려워진 조건에서 ‘중단→축소→폐기’로 이어지는 단계별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직접 교환하는 협상 구도에서 벗어나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멈출 실효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를 두고 지난 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업무보고에서 4자회담 추진 구상을 밝혔지만,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를 ‘이상주의’라며 차이를 보였다. 교전 당사국들인 남·북·미·중이 4자회담을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게 하려면 관련 당사국들이 4자회담에 실질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4자회담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시각차가 드러났고, 지금 당장 핵심 당사국인 북한이 비핵화 의제를 다루는 4자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는 영토조항을 헌법에 신설하고 두 국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남측의 문화 침투를 차단하는 동시에, 더 이상 분단체제 속 ‘북한’이 아닌 핵보유국으로서 독립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국 역시 유엔사 해체나 주한미군 위상 변화 등을 초래할 수 있는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성을 보일지 미지수다.
결국 4자가 당장 한 자리에 모이는 방식 보다는 북·미 또는 미·중 양자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정전체제를 유지하며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관계정상화를 먼저 추진하고, 추후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2(북·미)+2(한·중)’ 4자회담을 개최하는 수순을 검토해볼 수 있다. 또 다른 대안으로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미·중이 한국전쟁 종식에 전격 합의하고, 남북이 참여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2(미·중)+2(남·북)’ 4자회담 구상도 가능하다. 미·중 전략경쟁이란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인해 미국이 정전체제 유지를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손짓을 하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조만간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를 정밀하게 구체화하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향후 국면 전환의 핵심 관건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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