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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2019 연례학술회의 환영사]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9-07-12 15:46    3,068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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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한일 충돌과 한국의 선택

존경하는 내외귀빈 여러분, 한반도평화만들기의 ‘미중 충돌과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특히 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서 바쁜 가운데 와주신, 존경하는 문희상 국회의장님께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제질서는 냉정하게 말해서 강대국 정치의 결과입니다. 19세기의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 균형 질서, 20세기의 미소 대결을 중심으로 한 냉전 질서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미중 충돌 역시 21세기 강대국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미중 두 나라의 경쟁은 2010년을 전후해서 본격화되었고, 특히 최근에 와서는 무역과 기술 패권을 놓고 두 나라가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응용역사학의 대가인 그레이엄 앨리슨이 경고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우려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요즘 자국 만을 생각하는 국가간 대립 양상을 보면 국제 정치에서 합의 가능한 도덕이 존재하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power)과 국익(national interest)을 정의로 보는 헨리 키신저, 존 미어샤이머 등 현실주의 국제정치 대가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반도가 안고 있는 고유한 ‘국제적 성격’을 고려할 때, 전형적인 동북아 국가로서 한국은 미중 경쟁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미중 경쟁 혹은 미중 충돌의 양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국면적 변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대체로 미중 경쟁이 최초로 거론되는 시점인 2000년도를 전후로 하여 미중간 갈등은 어느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한 ‘사건 지향적인’ 갈등이라는 특징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중국이 어느 반체제 인사를 감금하느니, 미국이 티벳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초청하느니, 미국의 저작권을 중국이 침해하느니, 대개 이러한 특정 이슈들이 갈등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을 전후로 하여 미중 경쟁은 일종의 ‘제도적 경쟁’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라는 일종의 중국 버전 안보 다자대화를 시작하고,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집권과 함께 일대일로라는 구체적인 지역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2016년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디자인해 놓은 국제질서를 중국 중심의 제도적 장치들로 대체해 보겠다는 시도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미중 갈등이 소위 ‘글로벌 기술 경쟁’ 혹은 ‘표준 경쟁’으로 일컫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화웨이 사태와 5G를 둘러싼 논쟁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차원의 표준을 세우는 일에 스스로 중심이 되겠다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한 마디로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서 세팅해 놓은 다양한 영역에 걸친 국제 질서가 중국 주도의 다른 제도와 표준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직면한 것입니다. 예전에 미중간 대결이 ‘사건 중심적’이거나 ‘제도 중심적’일 때는 한국의 입장에서 소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표현이 언론이 종종 등장하곤 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국익을 챙기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는 일은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어떤 표준과 기술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익과 운명에 다가온 도전이 과거보다 훨씬 거세고 힘겹게 된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참으로 난감한 외교적 고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외교안보 자산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숱한 곤경과 어려움을 극복할 때마다 한·미동맹은 항상 결정적인 힘이 되어 왔습니다. 중국 역시 매우 중요한 경제‧외교 파트너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국가 중 1위의 대 중국 수출국가입니다. 북핵 문제의 성공적인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의 협력은 필수입니다. 

과거의 사례를 돌이켜 볼 때, 미중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우리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은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갈등과 위기의 순간일수록 한국과 같은 중견 국가의 입지는 취약해지는 것입니다. 미국, 중국 같은 강대국을 타이르고 중재할 외교적 역량이 부족하기에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을 향해서 당당하게 주문합니다. 두 강대국은 소나무가 울창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이른바 ‘송무백열’(松茂柏悅)식의 공존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21세기 지구촌의 시대정신에 부응해 미래지향적이고 호혜적인 동아시아 질서를 앞당기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나라가 지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송무백열‘의 인식을 갖는다면 지금과 같은 양국의 충돌은 사라질 것입니다.

한국의 역사적 역할도 분명히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식민주의‧제국주의의 어두운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한국은 동아시아의 새 질서 창출을 위한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능히 해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세 지도자의 6·30 판문점 회동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대장정에서 우리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촉진자 역할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미중 충돌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북핵 위기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앞에 한일 충돌이라는 복병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는 한국이 동북아에서 3중의 외교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사태는 심각합니다. 일본과 밀착 협력을 해도 시원치 않은 판국인데 거꾸로 불화를 겪는 것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한일 관계의 부침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외교 정책에 투입할 자산이 넉넉하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불이 났으면 일단은 끄는데 합심해야 합니다. 불길이 우리를 덮치면 그 피해는 여야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모두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바닥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불을 끄지 않으면 지하 1층, 2층, 3층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설사 내키지 않더라도 늦기 전에 아베 총리를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풀어야 합니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두 정상이 만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불길이 모든 것을 다 태운 뒤에는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무런 추가 움직임 없이 정상회담을 요구하면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일제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입니다. 무언가 징용 문제와 관련된 선순환의 움직임을 내놓고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사태의 수습을 위해서 대통령 직속으로 전문가위원회를 두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해법을 제시한 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국가 백년대계와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한 초당적 대응만이 사태의 악화를 막는 유일한 길입니다.

야당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가 꼬인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정부 들어와서 더 악화된 점이 있으나 문제의 연원은 보수 정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따라서 기업과 국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밀려오고 있는 지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문제를 푸는 데 힘을 보태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사태 수습의 일차적인 책임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 있지만, 야당도 분명한 입장을 정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바랍니다. 민주당을 비판하더라도 이 문제만큼은 같이 해결하자고 하는 초당적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다른 야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정부도 심사숙고했으면 좋겠습니다. 2차세계 대전 이후 국제 질서의 기둥은 유엔과 GATT의 후신인 WTO입니다. 그런데 두 기구 모두 미중 패권경쟁의 구도 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자국우선주의, 노골적인 힘을 과시하는 시진핑 주석의 샤프 파워(sharp power)가 문제입니다. 이 판국에 아베 총리까지 징용 피해자 문제를 이유로 한국 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국제 규범에 맞지 않고,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한일 양국의 경제는 샴의 쌍둥이처럼 한 몸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양국의 뜻있는 기업인들은 정치가 양국의 협력적 경제 관계를 분리하고, 파탄시키려 하는 데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양국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소모적 대결을 끝내고 오랜 신뢰와 협력 관계를 회복하려는 이성적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저는 얼마 전 제3국에 주재하는 일본 외교관과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 즉 CPTTP에 한국이 꼭 가입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 같이 중요한 이웃나라가 가입해 12개국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양국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두 나라가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과거사 문제로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한반도평화만들기의 오늘 학술회의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정책제안을 펼치는 자리입니다. 발표와 토론을 맡아주신 분들은 모두 국내를 대표하는 저명한 학자들이어서 훌륭한 통찰을 제시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통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한반도평화만들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귀중한 토론을 끝까지 경청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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